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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출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854
한자 言論出版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개인 또는 집단의 의견이나 어떤 사실을 매체를 통해 외부에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및 서적이나 회화 따위를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는 활동.

[개설]

군산시에서는 통신사를 비롯해 방송사, 전북 지역 일간지, 지역 주간지, 생활 정보지, 케이블 방송 등의 언론 매체가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청이 있는 조촌동[동부]과 문화동, 나운동[서부], 중앙동[원도심권] 등에 출판사와 인쇄소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근대 군산 지역의 언론과 출판]

군산 언론의 역사는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하는 1910년 경술국치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1902년 전라북도 최초로 『군산 신보(群山新報)』를 창간한다.

같은 해 지바[干葉]라는 일본인에 의해 『한남 일보』가 등사기로 찍어낸 신문으로 발행되지만, 곧바로 폐간된다. 일본어로 된 주간지였으나 일본의 거류민회 회장 선거용 홍보 인쇄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9년 12월 26일 전라북도 내 최초 월간지인 『실업지조선(失業之朝鮮)』이 발행된다. 사장 겸 주필은 우미정일(牛尾正一)이었다.

총독부 훈령을 철저히 홍보하던 『군산 일보』와 『실업지조선』은 해마다 군산부, 혹은 군산부 체육회 후원으로 부민 체육대회[운동회]와 개별 종목으로 달리기, 자전거 경기, 정구 대회 등을 개최했다. 그들은 서로 주최도 하고 후원도 하면서 교대로 행사를 열었다. 개항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점심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특히 월간지 『실업지조선』은 군산부민 운동회[축구, 야구, 정구, 군산-지경 왕복 마라톤 등]가 열리는 날에는 사진부 직원들이 경기가 열리는 현장으로 달려가 개막식과 입장식 그리고 다채로운 경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속보로 전달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군산 일보』는 중앙지에 버금가는 전국적인 신문이었다. 6면으로 발행된 1926년[대정 15년] 6월 9일 자 신문은 당시 군산의 경제적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연재 소설이 눈길을 끌었고, 따로 배치한 경성판과 광고판에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는 물론, 관공서·기업체·개인 상점 등의 광고와 문화 행사 안내가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1932년 6월에는 중앙 일간지 기자들[『조선 일보』 지국 김영기, 『동아 일보』 지국 김준권, 『매일 신보』 통신부 김황 등]이 주축이 되어 2개월에 한 번 발행되는 월간지 『군산 춘추(群山春秋)』가 발간하기도 했다. 군산부 소화통[중앙로 2가]에 사무실[전화 713번]을 마련한 그들은 지방 발전과 지방 언론의 중심지가 되는 것을 발행 목적으로 하였으며, 유지들의 호응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1935년 당시 군산에는 『조선 신문』 지사, 『부산 일보』 지사, 『경성 일보』 지국, 『일간 대륙』 지국 등 총 18개의 국내·외 신문 지사·지국이 있었다. 그중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어 신문은 13개, 조선인이 경영하는 조선어 신문은 5개였다. 특히 1920년 조선 총독부의 문화 정책에 의해 창간된 조선·동아 등의 한국인 지국장들은 일본 경찰의 주요 시찰 대상으로 많은 제약을 받았다.

[현황]

2013년 1월 15일 현재 군산 시청을 출입하는 언론사는 통신사 3개, 방송사[케이블 포함] 5개, 중앙지 1개, 지방 일간지 14개[『광주 일보』 포함], 지역 주간지 4개 등 총 27개사[생활 정보지 제외]이며, 시청에 등록된 인쇄소는 71개, 출판사 43개[2012년 11월 기준]로 나타났다. 이들 출판사는 활자 인쇄와 인터넷 출판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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