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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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弼秀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민정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7월 - 김필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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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1909년 9월 - 김필수 목사 장립 |
수학 시기/일시 | 1904년 - 김필수 평양 신학교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김필수 진안 지역 목회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9월 - 김필수 군산 교회와 구암 교회 위임 목사로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48년 10월 30일 - 김필수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1년 10월 15일 - 김필수 전라 노회 초대 회장 선출 |
출생지 | 김필수 출생지 -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죽산 |
학교|수학지 | 평양 신학교 - 평안남도 평양 |
활동지 | 김필수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전주시|진안군 |
성격 | 목사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전라 노회 초대 회장|군산 교회 위임 목사|구암 교회 위임 목사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개신교 목사.
[개설]
김필수의 호는 추강(秋岡)이다. 1898년 전라북도 전주에 정착하여 1899년 세례를 받았다. 1909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으로 1911년부터 전라북도 군산에서 목사로 활동했다. 1915년 『기독 신보』 주필이 되어 상경한 후, 주로 언론, 출판 활동에 주력하였다.
[활동 사항]
1915년 12월 『기독 신보』 주필에 임명되어, 서울에서 교계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기독 신보』 주필직을 사임한 후 1922년 YMCA의 월간지 『청년』의 편집인이 되었으며, 1923년에는 YMCA 종교부 간사가 되어 'Y-man'으로서 활동하였다. 이 기간 중 ‘조선 민립대학 기성 운동’과 ‘언론 집회 압박 탄핵회’에 참여했다. 1924년 『기독교 서회』 편집부의 활동에 간여하여 여러 번역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1937년경 은퇴하였다.
[사상과 저술]
『예수교 회보』의 사설, 『기독 신보』 주필 시절의 각종 기고문, YMCA 활동 기간에 행한 강연문, 『기독교 서회』 활동시 공동 번역서 등 다수가 있다.
[묘소]
김필수는 1948년 10월 사망하였고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