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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25
한자 蔡基永
이칭/별칭 여종(汝宗)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1년연표보기 - 채기영 출생
추모 시기/일시 1892년 - 채기영 정려 건립 명령
묘소|단소 채기영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보석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채기영 효자비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대창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평강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옛 임피현] 지역 출신 효자.

[개설]

채기영(蔡基永)은 조선 시대 임피현에 세거한 평강 채씨 소감공파 출신으로 부모가 살았을 때는 봉양을 다하였고, 부모가 돌아가심에는 그 추모함에 효성을 다하였다. 이에 정부에서 정려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는데, 당시 세운 효자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가계]

채기영의 자(字)는 여종(汝宗)이다. 평강 채씨 시조 채송년(蔡松年)의 21세손이고, 임피 입향조인 소감공 채양생의 1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직(贈職)[죽은 후에 내려주는 관직]으로 가선 대부 호조참의를 받은 채응국(蔡膺國)이고, 할아버지는 증직으로 통훈 대부 군자감정을 받은 채신공(蔡愼恭)이며, 아버지는 채홍연(蔡弘淵)이고, 외할아버지는 최덕룡(崔德龍)[본관은 경주]이며, 장인은 김유범(金有範)[본관은 광산]이다.

[활동 사항]

채기영은 1821년(순조 21)에 태어났고, 사망한 연도는 미상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자질이 순수하여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마침내 부모가 사망하자 20여 리 먼 곳에 장사를 지내고 새벽마다 가서 엎드려 곡을 하고 밤 늦게 돌아오기를 춥거나 더운 날씨에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1892년(고종 26)에 정부에서는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여 건립하였다. 1970년에 당시에 세운 비석을 군산시 임피면 대창리 대령 마을에 이건(移建)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보석리 남쪽 산 기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증직(贈職)으로 가선대부 동몽 교관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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