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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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宮斗 |
이칭/별칭 | 백칠(伯七),총지(摠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두헌 |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임피현] 지역 출신의 도인(道人).
[개설]
남궁두(南宮斗)는 본관이 함열이고, 임피에서 태어났으며, 1555년(명종 10) 식년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당질과 첩을 죽이고 도주하여 중이 되어, 무주 적상산 부근에서 권진인(權眞人)을 만나 신선술을 연마하여 지선(地仙)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가계]
남궁두의 자(字)는 백칠(伯七)이다. 함열 남궁씨의 시조 남궁원정(南宮元淸)의 18세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사직(司直)을 지낸 남궁현(南宮顯)이고, 할아버지는 남궁석(南宮錫)이며, 아버지는 남궁집(南宮緝)이다. 외할아버지와 장인은 미상이다.
[활동 사항]
남궁두는 1528년(중종 23)에 태어났고, 사망한 연도는 미상이다. 1555년(명종 10)에 식년시 생원시에 응시하여 3등 16위[합격자 총 100명 중 46등]로 합격하였다. 『가정 삼십사년 을묘 삼월 초칠일 사마방목(嘉靖三十四年乙卯三月初七日司馬榜目)』에 그의 거주지가 임피(臨陂), 전자(前資)는 유학(幼學), 부모는 구경하(具慶下)[응시 당시 모두 생존하였다.], 아버지는 전참봉(前參奉) 집(緝), 아우로는 벽(璧), 허(虛)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불륜 관계였던 당질과 첩을 죽이고 도주하여 중이 되었다. 법명은 총지(摠持)이고, 지리산 쌍계사에서 숨어 살았다.
의령의 어느 한 암자로 거처를 옮겼을 때 도교의 방술에 뛰어난 노승[권진인(權眞人)]을 무주 적상산 부근에서 만나 신선술을 익혔다. 후에 하산(下山)하여 고부(古阜)에서 허균(許筠)을 만나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허균에게 들려주었다. 허균은 자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을 실어 세상에 알렸다. 신선술 연마와 관련된 남궁두의 설화는 당시 유몽인(柳夢寅)의 『어유야담(於于野談)』에도 실려 있는데, 다른 사람의 문집이나 야담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 전라도 편에서 호남의 도사(道士)로 남궁두와 권극중(權克中)을 손꼽고 있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나이가 90살이 되었어도 거의 늙지를 않았고, 언제나 명산대천을 떠돌아다녀 사람들은 남궁두를 지선(地仙)이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