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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12
한자 李達俊
영어공식명칭 Yi Dalj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연표보기 - 이달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8일 - 이달준 독립 만세 시위 전개
몰년 시기/일시 1919년 8월 12일연표보기 - 이달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2년 - 3·1 운동 선열 추모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창의사 추모각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4·4 독립 만세 운동 기념탑 건립
출생지 이달준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341
거주|이주지 이달준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34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정의]

일제 강점기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달준(李達俊)[1881~1919]은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가계]

이달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명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활동 사항]

이달준은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341번지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직업은 농민이며 천도교인이었다. 이달준은 충청남도 당진군[당시 서산군] 대호지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만세 운동은 1919년 2월 말 남주원(南柱元)을 중심으로 도호 의숙(桃湖義塾) 출신 유생들이 고종의 인산(因山)[국장]에 참례하고 귀향함으로써 추진되었다. 유생들은 대호지면 면장인 이인정과 면사무소 직원들, 대호지면 송전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천도교 세력과 연대하여 치밀하게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만세 운동의 장소는 5일장이 열리던 당진군 정미면 천의리로 정하였고 봉기일은 장날인 4월 4일로 하였다. 주민 동원은 이인정 면장이 「도로 수선 병목 정리의 건[도로 보수와 가로수 정비]」이라는 문건을 발부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는 면내 집집마다 주민 1명씩이 출석하여 도로 보수를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각 마을 구장들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대호지면 주민들은 4월 4일, 농기구를 지참하고 조금리에 있는 대호지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약 500여 명이 운집한 면사무소 광장에서 이인정 면장과 유생들은 독립 만세 운동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역설하고 주민을 설득하였다. 주민들은 이에 공감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고 7㎞를 이동하여 봉기 장소인 천의 장터로 향하였다. 1,000여 명의 대호지면정미면 주민들은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고, 이를 제지하는 천의 주재소의 일본 순사와 한국인 순사를 무력으로 물리쳤으며 돌을 던져 천의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천의 장터 독립 만세 운동 직후 이달준을 비롯한 대호지면 송전리 주민 300여 명은 1919년 4월 8일, 재차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마을 내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순시 중이던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곧바로 해산되었다. 이달준은 일제 경찰에 의해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5월 31일 구류되었으며, 6월 17일 검사 기소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8월 12일 공주 지방 검찰청에서 순국하였다.

일제는 이달준의 사망 원인을 병사로 위장하기 위해 대호지면 장정리에 거주하면서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한 남상은(南相殷)을 입회인으로 서명케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후일 출옥한 남상은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일제는 이달준의 시체를 유족에게 인도하지 않았고, 유족들은 일제가 시신을 금강 하류에 유기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송전리 주민들과 함께 한동안 수색하였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달준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대호지면 주민들은 1972년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3·1 운동 선열 추모비’를 건립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기렸고, 1992년에는 대호지면 조금리에 ‘창의사(彰義祠)’라는 추모각을 건립하여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대호지면 주민 573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995년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발발했던 정미면 천의리 천의 주재소 자리에 ‘4·4 독립 만세 운동 기념탑’을 건립하여 추모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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