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461 |
---|---|
한자 | 齋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북구|달서구|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 지역에 남아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집
[개설]
재실(齋室)은 조상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묘소 근처나 강학지, 유허지 등에 지은 집을 이르는 말이다. 재실의 ‘재(齋)’는 ‘제계(齊戒)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맑게 하여 선조를 생각하고 추모하는 것을 뜻한다. 묘소에 재실을 둔 것은 진한(秦漢) 때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구의 재실]
1768년에 간행된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1924년에 간행된 『대구읍지』에 일부 재실이 수록되어 있다. 1972년에 발행된 『대구달성지(大邱達城誌)』에는 재실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1998년과 2007년에 간행된 『대구향교지』에는 새로 건립된 재실도 거의 빠짐없이 수록하였다.
대구 지역의 구청이나 문화원, 지역 연구단체에서 조사한 재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수성구에는 인천채씨의 성산재(城山齋), 아산장씨의 덕산재(德山齋)·계술재(繼述齋), 청주정씨의 충효재(忠孝齋), 밀양박씨의 솔일재(率一齋), 경주김씨의 덕암재(德巖齋), 중화양씨의 학산재(鶴山齋)·영모재(永慕齋), 옥산전씨의 무동재(武洞齋), 성주배씨의 영사재(永思齋) 등 모두 10개의 재실이 있다.
북구에는 인천이씨의 심수재(心輸齋)·경암재(景巖齋)·금서재(琴西齋)·오사재(五思齋)·경모재(敬慕齋)·영사재(永思齋)·척첨재(陟瞻齋)·회연재(晦淵齋), 능성구씨의 창포재(菖蒲齋)·영모재(永慕齋)·물소재(勿小齋), 달성서씨의 용담재(龍潭齋)·일신재(日新齋)·추모재(追慕齋), 함안조씨의 노원재(魯院齋), 달성배씨의 원모재(遠慕齋)·관천재(觀川齋)·봉서재(鳳棲齋), 청주양씨의 거은재(莒隱齋), 선산김씨의 경모재(景慕齋), 김녕김씨의 경의재(景毅齋)·사성재(思誠齋), 성주배씨의 귀후재(歸厚齋), 정선전씨의 도남재(道南齋), 인천채씨의 도례재(道禮齋), 우봉이씨의 도산재(道山齋), 덕산이씨의 백암재(栢菴齋), 경주이씨의 영모재(永慕齋), 영동박씨의 원사재(遠思齋), 김해김씨의 이로재(履露齋), 경주김씨의 경모재(敬慕齋) 등 모두 31개의 재실이 있다.
달서구는 단양우씨의 경인재(景仁齋)·덕양재(德陽齋)·신덕재(新德齋)·월평재(月坪齋)·추모재(追慕齋), 달성서씨의 낙선재(樂仙齋), 밀양박씨의 경림재(景林齋)·도원재(桃源齋), 순천김씨의 경모재(景慕齋), 성주이씨의 도산재(桃山齋)·작촌재(鵲村齋), 김녕김씨의 경암재(慕巖齋), 고령김씨의 방해재(放海齋), 인동장씨의 송산재(松山齋), 평산신씨의 원모재(遠慕齋), 성산전씨의 원사재(遠思齋), 경주최씨의 저존재(著存齋), 밀양손씨의 첨모재(瞻慕齋), 기타 달암재(達巖齋) 등 모두 19개의 재실이 있다.
이 외에도 대구 지역에 아직 파악되지 않은 재실이 있을 수 있다. 당(堂)이나 정사(精舍)도 재실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특히 북구 지역에 재실이 많은 것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일부가 대구광역시 북구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구와 서구, 남구에는 재실이 거의 없다. 재실이 주로 묘소가 있는 산 아래에 건립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