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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71
한자 赤友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6년 9월 - 사회과학연구회 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7년 2월부터 - 적우동맹 사상강좌회 개최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2월 - 신우동맹 결성
개칭 시기/일시 1927년 12월 - 신우동맹에서 혁우동맹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28년 2월 - 혁우동맹에서 적우동맹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28년 4월 30일 - 적우동맹에서 일우당으로 개칭
해체 시기/일시 1928년 9월 - 일우당 해산
개칭 시기/일시 1928년 9월 - 일우당을 해산하고 우리동맹 결성
성격 학생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중등학교 학생들이 혁우동맹을 계승하여 결성한 비밀 결사.

[설립 목적]

적우동맹(赤友同盟)은 ‘마르크스주의적 혁명 전술의 함양’과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이라는 신우동맹의 강령을 계승하여 식민지 노예교육을 반대하고 사회과학을 연구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변천]

대구 6·10만세운동 이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중고등학교] 학생들이 1926년 9월 결성한 사회과학연구회신간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구성된 강사들의 지도로 1927년 2월부터 비밀리에 사상강좌회를 개최하였다. 사상강좌회 회원들은 1927년 12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학생운동 비밀결사인 신우동맹을 결성하였다. 회원이 점차 늘자 일제에 발각될 위험성이 커진다고 생각한 끝에 신우동맹이 결성된 달과 같은 달인 12월 신우동맹에서 혁우동맹(赫友同盟)으로 비밀결사의 명칭을 바꾸었다. 1928년 2월에는 혁우동맹에서 적우동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적우동맹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교남학교[현 대구대륜중고등학교], 대구농업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대구공립중학교[현 대구중학교] 등 대구 지역 중등학교 학생들이 연합하여 결성되었다. 1928년 4월 30일 적우동맹에서 일우당(一友黨)[일우동맹(一友同盟)]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1928년 9월 일우당을 해산하고 이덕주(李德柱)·김영수(金永壽) 등이 새로이 우리동맹을 결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적우동맹의 창립 회원은 장적우, 윤장혁, 장종환, 정수광, 문철수, 황보선, 상무상 등 20여 명에 달하였다. 적우동맹은 서무를 두고 서무 아래 정치부·조직부·선전부·조사부·출판부·재정부 등 6개의 부서를 두어 운영하였다. 서무는 윤장혁이 맡았다. 적우동맹은 강령에 따라 사회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생운동의 전술을 강화하고, 학생운동이 민족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한 역량 강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적우동맹은 레닌의 『제국주의론』, 오야마 이쿠오[大山郁夫]의 『민족계급의식』, 평범사 발행의 『사회사상전집』과 월간지 『조선지광(朝鮮之光)』 등을 활용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1928년 3월 일본인 교사가 수업 중 이순신을 ‘적’으로 규정한 발언이 대구고보 폭압정책 반대동맹의 결성을 통한 대구고보 동맹휴교 투쟁으로 이어졌다. 적우동맹을 비롯한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민족 차별 철폐, 조선인 본위의 민족교육 실시, 학생 자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식민지 교육 반대운동을 펼쳤다.

[의의와 평가]

적우동맹은 1920년대 후반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저항한 동맹휴학 투쟁을 전개하여 민족운동의 고양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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