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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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四大秘社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의 중등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3개 항일 학생 비밀결사와 격문 투쟁 사건.
[개설]
대구사대비사사건(大邱四大秘社事件)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중고등학교]의 사회과학연구회, 대구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프로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 대구사범학교 사회과학연구그룹 등 3개 항일 학생 비밀결사와 대구상업학교 프로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이 보병80연대와 대구역·대구 시내 주요 학교 등지에 격문을 살포한 격문 투쟁 사건인 대구격문사건 등 4개를 가리킨다. 대구사대비사사건은 3개의 항일 학생 비밀결사와 대구격문사건을 일제가 사법적으로 탄압할 때 붙인 이름이다.
[역사적 배경]
대구사대비사사건은 1920년대 후반 대구 지역 학생 비밀결사 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역량을 바탕으로 일제의 침략전쟁 반대와 제국주의 반대를 내세우며 비합법적 투쟁의 학생운동을 전망하는 속에서 1930년대 전반에 전개되었다. 1930년대 학생운동은 교육 현장인 학교를 벗어나 사회운동 세력과의 연대를 통하여 민족운동의 중심에 서고자 하였다. 대구사대비사사건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의 사회주의운동 노선이 혁명적 대중운동으로 전환하면서 학생운동도 사회주의운동 노선에 따라 반제국주의 투쟁과 민족 혁명을 완성하기 위하여 벌인 항일운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경과]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출신과 교남학교[현 대륜중고등학교], 계성학교[현 계성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사회과학연구회는 사회주의사상을 바탕으로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대표자회를 결성하고, 생산현장에서는 사회주의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전위조직건설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는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경상북도 조직과 연대하여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를 비밀리에 결성하고 사회주의운동을 펼쳤다.
대구상업학교 프로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은 1931년 4월 대구상업학교의 동맹휴교 투쟁 시도, 기독교회 운영의 야학에서 강연회 개최, 일제의 만주 침략을 반대하는 반제국주의 격문 투쟁 등 학생운동과 노동자·농민 등 근로대중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운동을 펼쳤다.
대구사범학교 교사 현준혁이 학생들을 규합하여 결성한 대구상업학교 사회과학연구그룹은 사회과학 연구를 통한 조선 혁명의 완성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사회과학연구그룹은 훗날 교사가 되어 농촌과 공장 현장에서 학생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선 혁명을 의식화시킬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대구사대비사사건은 1931년 12월 보병80연대 격문 살포를 수사하던 일제 관헌에 의하여 사회과학연구회, 대구상업학교 프로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 대구사범학교 사회과학연구그룹이 차례로 발각되어 일제의 탄압을 받고 해산되었다. 관련자들은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명목으로 징역 2년 6월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또한 기소유예와 기소중지를 처분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후 대구사대비사사건 관련 인물들은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혁명적 대중운동을 이끌며 민족운동을 발전시켰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출신인 나정운은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에서 노동 청년 및 여성부를 맡아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단식투쟁 사건으로 퇴학을 당한 최소복은 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고 농민운동과 반제국주의운동을 전개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의 이홍기는 ‘예천무명당’에서 활동하며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사회과학연구회의 김홍직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혁명적 농민조합 운동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사대비사사건은 1930년대 전반 조선 사회운동의 전형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대구사대비사사건을 일으켰던 관련자들은 이후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혁명적 대중운동을 이끌며 1930년대 민족운동 고양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