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497 |
---|---|
한자 | 尙德祠 碑閣 |
영어공식명칭 | Sang Deoksa Bigak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문우관길 13[남산동 57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건립 시기/일시 | 1826년 - 상덕사 비각 건립 |
---|---|
이전 시기/일시 | 1910년 - 상덕사 비각 문우관으로 이건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10년 - 상덕사 해체 |
현 소재지 | 상닥사 비각 - 대구광역시 중구 문우관길 13[남산동 570-1] |
원소재지 | 상덕사 비각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성격 | 비각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문우관 |
관리자 | 문우관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각.
[개설]
상덕사 비각(尙德祠碑閣)이 있던 상덕사(尙德祠)는 경상감영에서 동쪽으로 1리쯤에 있던 제향 공간이었다. 상덕사 비각은 상덕사 경내에 있었으나 현재 자리로 이건되었다. 상덕사는 1682년 일휴정(逸休亭) 이숙(李䎘)[1626~1688]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생사당으로 출발하였고, 이후 1727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유척기(俞拓基)[1691~1767]의 선정을 기려 이숙과 함께 배향하였다. 1826년 경상도관찰사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비문을 짓고 비각을 세워 매년 중양절에 제사를 지냈다.
[위치]
상덕사 비각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의 상덕사 경내에 있었으며 1918년에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570-1로 이전하였다.
[변천]
1910년 일본인들이 대구 이사청(理事廳)을 지으면서 상덕사가 헐리게 되었다. 이후 1918년 채헌식(蔡憲植)[1855~1933]이 상덕사 동쪽에 향교의 재산으로 문우관(文友觀)을 지으면서 상덕사 비각을 옮겼다. 이외에 순찰사 이공 휘숙 청덕선정비(巡察使李公諱䎘淸德善政碑), 관찰사 유공 휘척기 영세불망비(觀察使兪公諱拓基永世不忘碑), 순찰사 유공 휘척기 영세불망비(巡察使兪公諱拓基永世不忘碑), 도순찰사 친군남영사 이공 호준 영세불망비(都巡察使親軍南營使李公鎬俊永世不忘碑) 등 5기의 비석들도 함께 옮겼다.
[형태]
문우관의 출입문인 ‘진덕문(進德門)’을 중심으로 왼쪽은 강당이 있고, 정면에 남향하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상덕사 비각이 있다.
[의의와 평가]
상덕사 비각과 비석들은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로서 현재의 대구광역시에 부임하였던 지방관들의 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