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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05
한자 大邱 尙德祠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26년연표보기 - 대구 상덕사 건립
해체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대구 상덕사 철거
최초 설립지 대구 상덕사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현 소재지 대구 상덕사 묘정비|상덕사비 - 대구광역시 중구 문우관길 13[남산동 570-1]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이숙과 유척기를 모시는 사당.

[설립 목적]

상덕사(尙德祠)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숙(李䎘)[1626~1688]과 유척기(兪拓基)[1691~1767]에게 제향하고자 건립되었다.

이숙은 1671년(현종 12) 경상도 전역에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고 부세(賦稅)를 감면하면서 직접 구휼 활동을 펼쳤으며, 흩어져 떠돌던 백성들이 돌아오면 양로 잔치를 열고 향사례(鄕射禮)를 베풀었다. 또한 학교에서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교육시키는 등 교육을 진작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이숙을 서원의 ‘선현’처럼 봉사하였다.

유척기는 1726년(영조 2)에서 1727년(영조 3)까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유척기는 유학을 권장하여 크게 일으켰다. 또한, 군영에 꿩을 바치는 일을 없앴고, 큰 돈을 내어 밭을 사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여 군역(軍役)과 부역(賦役)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등 백성들의 민생고를 해결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1778년(정조 2) 유척기상덕사에 추가 봉사하였다.

[변천]

상덕사는 1826년(순조 26) 경상감영의 성(城) 동쪽 1리에 건립되었다. 1910년 상덕사를 허물고 상덕사 자리에 대구이사청 건물을 지었다. 상덕사 묘정비와 비각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570-1로 이전하였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상덕사’라 이름을 지었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가 편액을 썼다. 상덕사 묘정비의 비문은 경상도관찰사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상덕사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의 구체적인 선정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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