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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81
한자 密陽朴氏
이칭/별칭 밀성 박씨(密城朴氏)
분야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래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밀양 박씨 본관 - 경상남도 밀양시
세거|집성지 밀양 박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지도보기|매전면 두곡리지도보기|각북면 남산리지도보기|이서면 학신 2리
성씨 시조 박언침
입향 시조 박양무|박건|박세균

[정의]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박양무·박건·박세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 박씨(密陽朴氏) 시조는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아들인 박언침(朴彦忱)이다. 경명왕의 아홉 아들이 각각 분파할 때 맏아들인 박언침이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밀성(密城)[현 경상남도 밀양시]을 본관으로 하였다.

경명왕계의 8대군파(八大君派)와 국상공파(國相公派) 가운데 밀성 대군파가 밀양 박씨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박씨 선원 세보(朴氏璿源世譜)』에 의하면 밀양 박씨에서 10여 개 본관으로 분적했다고 한다.

[입향 경위]

청도 지역 밀양 박씨의 입향 경위는 입향지에 따라 크게 세 곳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조선 세종 때 밀양에 거주하던 은산파(銀山派)의 후예 박건이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 입향하였다. 그 뒤 박건의 막내아들인 박하징(朴河澄)수야리에 정착하였고, 장남인 박하담(朴河淡)은 1520년경 금천면 신지리에 이주하였다. 밀양 박씨 은산파 후손들은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14의사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청도 지역의 중심 성씨로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산파(杏山派) 후손 박세균(朴世均)이 밀양의 속현인 풍각현[현 청도군 풍각면]에 입향하였다. 이후 박한주(朴漢柱)무오사화 때 화를 당하여 사림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박양무(朴楊茂)가 낙향하여 청도에 입향하였다. 박양무의 아들 박영립은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거창 현감을 역임하였고, 박계은·박맹문·박란(朴鸞)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을사사화 후 청도에 은거한 박호(朴虎) 이후 이서면 신촌리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에 노론의 입지를 나타낸 가문으로, 청도에서는 세월 박씨라 칭하고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2,239세대 5,9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대표적인 집성촌은 이서면 신촌리, 매전면 두곡리, 각북면 남산리, 이서면 학신 2리이다.

[관련유적]

이서면 학산리에 고려 때 문신인 박익(朴翊)을 기리기 위한 용강 서원이 건립되어 있다. 용강 서원 충열사 내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밀양 박씨 14의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14의사 묘정비’[경상북도 기념물 제129호]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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