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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059
한자 金自珍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13년연표보기 - 김자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세기 전반 - 김자진 무장에서 옥구로 이주
몰년 시기/일시 1485년연표보기 - 김자진 사망
거주|이주지 김자진 이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묘소 김자진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청암산지도보기
성격 입향조
성별
본관 김해
대표 경력 나주 목사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김해 김씨 장사군파 입향조.

[개설]

김자진(金自珍)은 본관이 김해이고, 15세기 후반에 세조 대에 계유정란이 발생했을 때, 사육신 박팽년의 딸이 자신의 제수(弟嫂)였기에 화(禍)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고향 무장으로 낙향하였으며, 다시 옥구로 입거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가계]

김자진김해 김씨 시조 김수로(金首露)의 5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마사를 지낸 김세장(金世章)이고, 할아버지는 장사군 김선(金璇)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을 지낸 김충(金冲)이다. 외할아버지는 전리(典理)를 지낸 오인택(吳仁澤)[본관 낙안]이고, 장인은 승지를 지낸 이극연(李極連)[본관 성주]이다.

[활동 사항]

김자진은 1413년(태종 13)에 태어나 1485년(성종 16)에 사망하였다. 옥구에 세거한 김해 김씨(金海金氏) 장사군파(長沙君派)의 입향조이다. 관직은 부정(副正), 나주 목사를 지냈다.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제거하려는 계획이 발각되어 사육신이 죽음을 당하자, 김자진의 동생 김자무(金自武)는 해주(海州)로 돌아갔고, 김자진은 고향 전라도 무장(茂長)으로 내려왔다가 곧바로 배를 타고 옥구현 회원면 원당리로 입거(入居)하였다. 아마도 동생 김자무(金自武)의 아내가 사육신 박팽년(朴彭年)의 딸이었기 때문에, 위험을 피하여 지방으로 내려와 거주하였던 것이라고 추정한다.

김자진이 15세기 후반에 무송(茂松)에서 옥구(沃溝) 원당리(元堂里)로 입거한 이후 김자진의 후손들이 회현면 금광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으며, 자신들을 김자진의 할아버지 김선(金璇)[1353~1426]이 고려 말에 전라도 무장(茂長)으로 들어와 거주하였다는 이유로 김해 김씨 장사군파(長沙君派)라고 부르고 있다. ‘장사(長沙)’는 무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묘소]

김자진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청암산에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