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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395
한자 張天末遺墟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Jang Cheonmal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희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건립시기/일시 현대
관련인물 장천말
재질 화강암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도동
소유자 울진장씨 종중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도동에 있는 장천말의 유허비.

[건립경위]

고려의 멸망 과정에서 1392년(태조 1) 조선이 건국되면서 공양왕은 원주로 유폐당했다가 다시 삼척궁촌에 감금되었다. 이에 장천영, 장천길, 장천말 등은 울진 토반[임씨, 최씨, 전씨]들과 합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무력으로 이성계를 꺾고, 공양왕의 둘째 왕자 완석을 옹립하여 왕씨 복위와 고려 재건을 도모하다 실패하였다.

이후 울진장씨는 역모죄로 갖은 박해와 수난을 겪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중 장천말은 너무 어려 도망갈 수 없자 울진 땅에 숨어 살았으며, 그 후손들이 평해, 영해, 청송 등지에 칩거했다고 한다. 장천말은 이들 각 계파의 시조로, 후손들이 최근에 유허비를 세웠다.

[형태]

장방형 받침돌에 비선이며, 지붕돌[옥개석]로 되어 있다.

[금석문]

앞면에 ‘통훈대부행율봉도찰방울진장공휘천말유허비(通訓大夫行栗峰道察訪蔚珍張公諱天末遺墟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현재 비각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각에는 담장이 둘러쳐졌고, 안에 팔작지붕 형태의 비각이 있으며, 비각 앞면에 ‘유허각(遺墟閣)’이라는 현판이 있고, 그 안에 비가 있다. 비는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울진의 향토 씨족 중의 하나인 울진장씨의 정착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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