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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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毓英齋 |
영어공식명칭 | Yukyoungjai |
이칭/별칭 | 송동서숙,송동숙,송남서당,기성학교,세종 육영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1길 64-7[송용리 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건립 시기/일시 | 1600년대 - 충청도 연기현 동이면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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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76년 - 충청도 연기군 동면 송용리 254-1에서 송용리 7-2로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05월 31일 - 육영재 연기군 향토유적 제39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육영재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9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1~1926년 - 육영재 폐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2년 07월 01일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1길 64-7[송용리 7-1]로 변경 |
현 소재지 | 육영재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1길 64-7[송용리 7-1] |
원소재지 | 육영재 -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송용리 7-1 |
성격 | 건물 |
양식 | ‘ㄱ’자형 평면 구조 팔작지붕 건물 |
정면 칸수 | 6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결성장씨 문중 |
관리자 | 결성장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9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개설]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을 짓고 자손들을 가르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육영재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기성학교(期成學校)로 변모하여 신식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육영재에서 수학한 애국열사로 장재학·장재규 형제를 비롯하여 3.1운동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순국한 장홍진·장기민 등이 있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1.6㎞를 가면 송용마을이 나온다. 육영재는 송용마을의 가장 북쪽 구릉지에 자리한다.
[변천]
육영재 내에 있는 「송남서당이건기(松男書堂移建記)」에 의하면 건립 당시 충청도 연기군 동면 송용리 254-1에 있었으나 1876년(고종 13)에 현재 위치인 송용리 7-2로 이건하였으며,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 7-1로 행정 주소가 바뀌었다. 육영재는 1921년에 신식 학문을 교육하는 기성학교를 개설하여 운영하다가 인근에 연동공립보통학교가 정식으로 개교됨에 따라 1926년에 기성학교를 폐교하였다. 그 후 결성장씨 문중에서는 광복 직후까지 서당계를 조직하여 한문 교육의 명맥을 이어 갔고, 현재까지 건물의 보수·유지와 전래하여 온 전적의 보존·관리에 힘쓰고 있다.
[형태]
육영재는 ‘ㄱ’자형의 팔작지붕 건물로, 솟을삼문의 대문을 들어서면 서당이 가운데에 자리해 있다. 한쪽 정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기와를 올린 담장이 서당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현황]
마루의 처마에는 ‘毓英齋’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2001년 5월 31일 연기군 향토유적 제39호로 지정되었다가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육영재는 조선 후기에 건립되어 400년 이상 동안 잘 보존되어 온 문중서당(門中書堂) 건물이다. 문중서당은 조선시대 각 지방에서 학문으로 명망이 높거나 유력한 자산가 집안에서 문중학계 등을 운영하며 건립·유지하여 온 사설교육기관으로, 이를 통해 연동면 결성장씨가 당시 향촌사회에서 점하고 있던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