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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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履命 |
영어공식명칭 | Bak Imyeong |
이칭/별칭 | 성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상호 |
출생 시기/일시 | 1823년(순조 23) - 박이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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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57년(철종 8) - 박이명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890년(고종 27) - 박이명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91년(고종 28) - 박이명 정문을 내려줌 |
추모 시기/일시 | 1946년 - 박이명 정려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4년 - 효자 박이명 정려 개보수 |
묘소|단소 | 효자 박이명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 산119-3 |
성격 | 무신|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고령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개설]
박이명(朴履命)[1823~1890]은 본관이 고령(高靈)이고, 자는 성지(性之)이다. 1857년(철종 8) 무과에 급제한 뒤 남포현감을 지냈다.
[가계]
박이명은 영성군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증손이자 박승규의 아들이며, 처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대장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이명은 어려서부터 먹을 것이 있으면 항상 부모님께 먼저 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기고 예를 다하여 부친을 장사 지낸 달이 돌아오면 절반은 집에서 모친을 모시고 절반은 부친의 묘소에서 시묘하였다 하며, 이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만두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모친상을 당하여서도 변함이 없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감동하여 박이명의 집 앞 길을 쓸어 주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전의 유림에서 박이명의 효성을 감영에 알리자 1891년(고종 28)에 정문(旌門)[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이 내려졌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에 있는 효자 박이명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1994년에 개·보수되었다.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내부 상단부에는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2014년 9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