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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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勞動夜學 |
영어음역 | Nodong Yahak |
영어의미역 | Worker's Nigh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동환 |
[정의]
일제 강점기 3·1 운동 이후 제천청년회가 개설한 야학.
[개설]
1907년 한국 초유의 노동 야학 기관인 마산노동야학이 창립된 이후 주로 1920년대에 전국 각지에 청년회가 조직되면서 애국 계몽 활동을 전개하는데 그 일환으로 노동 야학을 개설하여 민중을 교화하고자 하였다. 제천청년회도 1920년 창립 이후 각종 활동을 전개하면서 노동 야학도 설치하고 지역의 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제천청년회와 노동 야학]
제천청년회는 1919년 가을에 태동해서 1920년 7월 11일 제천공립보통학교에서 유지들이 발의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제천청년회는 지역민의 지·덕·체 삼육(三育)과 실업 장려, 풍속 개량을 목표로 설정하고, 총무부·평의부·재무부·덕육부·지육부·체육부·실업부·위생부·음악부·구제부 등 10개 부서를 편성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천청년회의 봉양지부장으로 활동한 이용태의 기록으로 보면, 초창기부터 각 리(里)에 노동 야학을 운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초기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1925년 이후부터 본격적 활동을 벌였다. 제천청년회는 1925년 8월에 건물 면적 462.81㎡ 규모의 회관을 신축하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벌이게 되었고,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보통학교 졸업생 약 100여 명을 대상으로 노동 야학을 개설하였다. 여기서 개설한 과정은 에스페란토, 중국어, 부기, 주산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노동 야학의 존속 기간이나 구체적 활동 사항을 전하는 자료가 없어 더 이상의 성과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제천청년회의 교육 활동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다가 1930년대 이후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점차 유명무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제천청년회의 노동 야학과 관련된 성과는 관련 기록의 부족으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만 일제의 감시와 억압에도 제천청년회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속에서 제한적이나마 노동 야학의 교육 활동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실력 양성론의 일환으로 지역민 계몽을 위한 문화 운동이 제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