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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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漢順 |
영어음역 | Gim Han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병철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7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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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근우회 하동지회 위원장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개설]
김한순은 근우회(謹友會) 하동지회 초대 위원장이다. 근우회는 1927년 5월 민족주의여성운동과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양 진영 합동으로 결성되어 1931년 사실상 해체될 때까지 4년간 한국여성운동의 중추부로 기능하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치 분위기를 타고 1920년대에 전국적으로 여성단체가 폭발적으로 생겨나 1923년까지 150개를 헤아렸다. 이들은 대체로 여성 계몽과 지식향상, 생활 개선 등 초기적 여권향상에 목표를 두고있었다. 그러나 1923,24년을 고비로 이러한 민족주의계 여성운동은 침체되기 시작한다. 계몽운동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었다. 이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던 것이 사회주의 여성운동이었다. 남녀불평등의 기원과 억압의 내용, 전망까지 이론적으로 제시하는 사회주의 여성 운동론은 지식여성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1924년에는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운동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가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1927년 국내외 운동에서 협동전선론이 대두함에따라 1927년 2월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되자, 여성운동계도 양 진영이 통합하여 근우회의 탄생을 보게되었다. 이후 각 지역에 근우회 지회가 결성되어 1930년까지 전국적으로 60여 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점차 운동에서 협동 전선 노선이 퇴조하면서, 근우회는 1931년 해체되었다.
[활동 사항]
김한순(金漢順)은 1928년 7월 1일 근우회 하동지회가 설립되었을 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근우회 하동지회에서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채소정(蔡小丁), 조필열(趙必烈), 강정수(姜貞守), 김점표(金點杓), 박삼모(朴三模), 조복순(趙福順), 조정희(趙貞姬), 김귀례(金貴禮), 신수명(辛秀明), 제영순(諸英順), 김보배(金寶培), 김은례(金恩禮), 김홍완, 강정회, 조양순, 도영순, 조복금 등이 있다.
근우회는 봉건적 굴레에서의 여성 해방과 일제 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반제 반봉건의 과제를 제시하고,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꾀하였다. 이를 위해 강연과 토론회 개최, 문맹 퇴치 등 여성 계몽 활동, 여학생 운동 지원, 노동 쟁의 조사 및 지원, 기관지 『근우』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근우회 하동지회나 김한순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역시 같은 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