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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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良甫面咸昌金氏戶籍類 |
영어의미역 | Family Register of Hamchang Gim Clan in Yangbo-m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함창 김씨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제작 발급 경위]
준호구(準戶口)는 함창 김씨(咸昌金氏) 가문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하동현에서 호적사항을 증명, 발급해 준 문서이다. 호구 단자(戶口單子)는 함창 김씨 가문의 호주가 국가의 호적 작성을 위하여 호(戶)의 구성 내용을 작성하여 하동현에 제출한 것이다.
[구성/내용]
준호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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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단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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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적(新戶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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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면 함창 김씨 호적류를 통해 1672년(현종 13)부터 1905년(고종 42)까지 230년에 걸친 호(戶)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이를 통하여 함창 김씨 집안의 계보와 호의 구성, 부부의 나이 차, 호적 기재 방식 등 많은 내용을 알 수 있다. 우선 김전(金銓)-김홍진(金弘震)-김근(金瑾)-김수번(金壽蕃)-김석정(金碩鼎), 김석승(金碩昇)-김덕후(金悳垕)-김광언(金光彦)-김시탁(金始鐸), 김시석(金始錫), 김시원(金始源)-김계윤(金啓潤)-김연주(金鍊周)-김학기(金學基)로 이어지는 계보를 정리할 수 있다.
호적에는 분가 사실도 보이는데, 김근과 아들 김수번의 사례이다. 1687년(숙종 13) 준호구를 보면 김근과 김수번이 각각 호주가 된 호구 단자가 있다. 비고의 가족 사항에서 이들이 부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김근의 호구 단자에는 아들 김수기가 45세로 나타나는데, 같은 해 김수번의 준호구에 김수번이 42세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687년 당시 김수기는 45세, 김수번은 42세이었으며, 형이 아버지와 함께 거주하고, 아우는 분가하여 독립 호구를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702년(숙종 28)의 준호구에는 40세 김수성, 28세 김수팽, 25세 김수장이 아들로 기록되어 있어, 김근의 아들이 김수기와 김수번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1717년(숙종 43)의 준호구에는 김석승의 처 박씨가 과부로서 호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 여성 호주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부부의 나이 차도 엿볼 수 있다. 1672년 김수번의 준호구를 보면, 김수번의 나이가 27세인데 부인은 19세의 손씨로 되어 있어 8세의 나이 차가 보인다. 1795년(정조 19)의 준호구를 보면 호주인 김시탁이 46세임에 비해 부인 문씨는 26세이다. 1783년(정조 7) 준호구에는 김시탁[나이 잘못 기재된 듯]과 처 박씨가 아버지 김광언의 호적에 올라 있고, 또 1799년(정조 23)의 준호구에는 김시탁의 처 박씨가 사망한 걸로 되어 있다. 이를 볼 때 김시탁이 박씨가 죽은 뒤 문씨와 재혼했음을 알 수 있다. 나이 차가 크게 나타나는 이유는 조선 시대 여성의 재가 금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호적 기재의 오류도 눈에 띈다. 김시탁의 호적류 문서를 살펴보면, 그는 김시석(金始錫)·김시원(金始源)으로 두 번 개명하였으며, 나이 기재에서 오류가 발견된다. 1804년(순조 4)과 1807년(순조 7) 준호구에는 각각 65세, 68세로 기재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55세와 58세였다. 1799년과 1802년(순조 2) 호구 단자에서도 각각 40세, 43세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50세, 53세의 오류라고 추정된다. 1783년도 44세가 아니라 34세이다. 연령 기재는 역과 세금 문제 때문에 속여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순히 기재 오류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양보면 함창 김씨 호적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672년 김수번(金壽蕃)의 준호구로부터 1905년 김학기(金學基)의 신호적까지 230년에 걸친 한 집안의 기록이다. 이를 통하여 호적 기재 방식 등 제도적 측면뿐 아니라 혼인과 재혼, 분가, 개명 등 가족과 관련된 여러 사실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가족사와 사회사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