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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석 시혜불망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551
한자 鄭鍾碩施惠不忘碑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dispensation of Jeong Jongseok
이칭/별칭 중추원 의관 정공 시혜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128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연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9년 9월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1288 지도보기
성격 시혜불망비
관련 인물 정종석(鄭鍾碩)
재질 화강암|흑요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43㎝[높이]|53㎝[너비]|23㎝[두께]
소유자 강선마을
관리자 강선마을 이장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에 있는 정종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중추원 의관이던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종석(鄭鍾碩)은 1868년(고종 5) 봄 적량면민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춘기에 납부해야 하는 호별 세금을 전액 납부하는 등 사재를 털어 주민들의 생계를 도와 세간의 칭송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효성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신의로 사람을 대하였다. 주민들은 그의 공덕을 기리고자 1930년 마을 앞에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은 정종석이 거주하던 하동군 적량면 서리 하서마을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비석이 마모되고 비문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이에 1989년 9월 주민들이 비를 고쳐 세우기로 뜻을 모아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지금의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강선마을국도 19호선 도로변으로 옮겨 새로 세웠고, 이때 비문도 새로 지어 새겼다.

[위치]

정종석 시혜불망비(鄭鍾碩施惠不忘碑)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1288번지 강선마을 앞 국도 19호선 도로변에 있다. 비석의 왼편 200m쯤 거리에 횡천강이 흐르고 고석교가 있다. 국도 19호선을 따라 북서쪽 방향 4㎞ 거리에 하동읍 시가지와 하동군청이 있으며, 하동군 농어촌 도로 302호선을 통한 북향 4㎞ 지점에 적량면사무소가 있다.

[형태]

정사각형으로 조성한 넓이 330×330㎝의 시멘트 바닥 위에 3단으로 화강암 기단을 쌓았다. 기단은 높이 30㎝이며, 맨 아랫부분은 정사각형으로 넓이 165×165㎝이고, 그 위에 크기 100×100㎝, 높이 50㎝의 거북형 받침을 놓고 비를 세웠다. 흑요암 비신(碑身)은 높이 143㎝, 너비 53㎝, 두께 23㎝이며, 상단에 가로 62㎝, 세로 58㎝, 두께 48㎝의 용 문양 덮개를 얹었다. 주변은 높이 75㎝의 화강암 석주 8개를 사면에 나누어 세우고, 또한 화강암 난관으로 석주를 이어 비석의 보호책을 만들었다.

[금석문]

비신의 정면에 가로, 세로 각각 9㎝ 크기의 글체로 ‘중추원의관 정공 시혜비(中樞院議官鄭公施惠碑)’라 새겨져 있고, 오른편 옆면에 가로, 세로 각각 2㎝ 크기의 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한자로 쓰여 있다. ‘삭녕 최씨 최인찬이 짓고, 오천 정씨 정직교가 써서 1989년 9월 건립추진위원회가 고쳐 세웠다[朔寧崔寅瓚撰烏川鄭直敎書. 光復四十五年己巳九月日. 建立推進委員會改豎].’

[현황]

정종석 시혜불망비는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주변에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다. 비석의 글씨가 선명하나 한자로 새겨져 있어 해득하는 사람이 드문 점이 아쉽다.

[의의와 평가]

정종석 시혜불망비는 개항기의 혼탁한 정세 속에 어려운 면민들을 구제한 독지가의 선행을 새겨 후세에 전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뜻 깊은 유적으로 후세에 귀감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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