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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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溪書院 |
영어의미역 | Yeonggye Lecture Hal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철 |
건립 시기/일시 | 157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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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593년 |
이전 시기/일시 | 1669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 |
성격 | 서원 |
소유자 | 하동 정씨 문중 |
관리자 | 정태기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에 있던 조선 전기의 서원.
[변천]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관향(貫鄕)이 하동(河東)이므로, 하동에 서원을 창건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발의하여 지역 유림과 하동 정씨(河東鄭氏) 후손들이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때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순찰사(巡察使)로 부임하여 적극적으로 서원 건립을 후원해 1579년(선조 12)에 완공하고, ‘영계서원(永溪書院)’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하여 봄가을로 제향을 올리기로 하였는데, 첫 번째 향사 때 학봉 김성일이 제향 축문(祭享祝文)을 지어 몸소 축문을 읽고 제사를 지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에 진주성(晉州城)이 함락되면서, 왜적이 식량 조달의 명목으로 하동성(河東城)을 침략하고 서량곡(西良谷)에 쳐들어와 영계서원과 쌍계사(雙磎寺)를 분탕(焚蕩)하였다. 이로 인해 영계서원이 훼손되었으나 난리 중에 보수할 겨를이 없었는데, 읍기(邑基)가 이웃 고을인 하동 횡포(橫浦)로 옮겨 간 것을 계기로 1669년(현종 10) 횡포 내기(內基) 서편[현 서원동]으로 이건하고, 학봉 김성일을 추배(追配)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현재는 비석 또는 기타 관련 유적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