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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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基軾 |
영어음역 | Jeong Gisik |
이칭/별칭 | 상덕(尙德),청천(晴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전병철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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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8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진양 |
[정의]
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상덕(尙德), 호는 청천(晴川). 고려조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 정신(鄭侁)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함수(鄭檻壽)이며, 할아버지는 애당(愛塘) 정치도(鄭致道)인데, 효성으로 인해 사헌부감찰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다. 이때 정치도의 형 정치덕(鄭致德)과 동생 정치행(鄭致行)도 동시에 증직과 정려가 내려져 ‘형제삼효(兄弟三孝)’라는 칭송이 있었다. 아버지는 농은(農隱) 정선우(鄭善佑)이며, 어머니는 남신헌(南愼獻)의 딸인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부인은 정찬두(鄭燦斗)의 딸 하동 정씨(河東鄭氏)이며, 그 사이에 5남 5녀가 있다.
[활동 사항]
정기식(鄭基軾)의 선조들은 본래 진주에서 살았는데, 증조할아버지 정함수가 하동에 옮겨 와 세거하였다. 정기식은 약관의 나이에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1870~194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배운 지 7~8년이 지났을 때 회봉이 정기식의 학업이 날로 진보하는 것을 칭찬하여 “오당(吾黨)에도 인재가 있구나!”라고 하였다. 당시 회봉의 조카 관료(寬寮) 하영태(河泳台)[1875~1936]와 함께 공부하면서 세한지교(歲寒之交)를 기약하였다. 또한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과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를 찾아가 뵙고 견문을 넓혔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늙은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였다. 만년에는 이명산(理明山) 월계봉(月鷄峰) 아래에 ‘이명산방(理明山房)’을 짓고 학문과 수양에 힘썼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청천유고(晴川遺稿)』 2권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이명산 서쪽 마광곡(麻匡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