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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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奉根 |
영어음역 | Gang Bong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숙향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9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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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몰년 시기/일시 | 1956년 9월 5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
묘소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활동 사항]
강봉근(姜奉根)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872년(고종 9) 9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무신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을 했다. 일본인 진주시장을 암살하기 위해 한국인 기생을 첩보원으로 삼아 도움을 얻었는데, 뒤에 이 기생은 미수 공범으로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해 설날, 제사를 모신 이른 아침에 강봉근이 마당에 나서서 문득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지게를 진 사람 등 거동이 수상한 사람 세 명이 마을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설날 아침에 지게를 지고 다닐 사람이 없을 것인즉, 이는 필시 자기를 잡으러 오는 일본 경찰로 직감한 강봉근은 황급히 마을 앞산으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마을[절터] 본가에 이르러 가족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추격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총 한 발을 발사하면서 적량면 동점을 경유하여 악양면으로 피신했으며, 일본 경찰들을 따돌리고 그곳에서 동료 의병들과 합류하였다. ‘범 같은 장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강봉근은 절터 본가 인근의 은밀한 곳에서 손수 화약을 제조하여 사용하였으며, 원근 각처에서 의병 활동을 했다고 전한다.
전라남도 광양의 태인도에서 일본군을 사살하고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언도받아 8년간 복역한 강봉근은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뒤에는 명호리 절터 마을에 거주하였는데, 인두로 지져 고문당한 어깨의 흉터를 비롯해 대쪽을 박는 모진 고문으로 손톱과 발톱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본가는 당초 옛 청암사 본당 자리로 짐작되는 집터의 바로 옆에 있었으나 일본 경찰의 방화로 소실되어 지금은 대밭으로만 남아 있다. 강봉근은 1956년 9월 5일, 혹은 1947년 8월 2일 사망했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절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수형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정부의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 청암면장 김상용에 의하면, 해방 후 1947~1949년경에 하동군에서 열렸던 8·15 경축식 때 독립 유공자로 표창 받은 사실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