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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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之衍 |
영어음역 | Jeong Ji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역관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 아버지는 현리(縣吏) 정국룡(鄭國龍)이다.
[활동 사항]
정지연(鄭之衍)은 역관으로서 중국어에 능통하여 여러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다. 1280년(충렬왕 6) 교위(校尉)로서 원에 가 환도(還刀) 378자루를 바쳤다. 1282년(충렬왕 8) 원에 들어가 “탐라진수군(耽羅鎭戍軍)[일본과 남송을 정벌하기 위해 탐라에 주둔한 원과 고려의 군대]은 고려에서 관원을 보내 관할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가지고 왔다. 1285년(충렬왕 11)에도 산원(散員)으로서 원에 들어가 “기미년 이래 도망해 원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황제의 명령을 가져왔다.
1287년(충렬왕 13) 낭장으로서 쌍성(雙城)의 첩자를 체포한 것에 대해 원나라에 보고하고, 이듬해 금·은패(金銀牌)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금·은패는 만호(萬戶), 천호(千戶) 등 몽고의 군직(軍職)을 제수하면서 주는 패이다. 만호나 천호는 관령하는 민호(民戶)의 수에 따른 명칭이다. 당시의 공론이 “우리나라에는 백성만 있고 따로 군대라는 것이 없는데 만호와 천호의 금패, 은패를 많이 청하였다가 만일 원나라 조정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 패(牌)의 수효대로 계산하여 군사를 징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근심하였다.
1307년(충렬왕 33) 좌상시 권수동지밀직사사(左常侍權授同知密直司事)를 거쳐 1309년(충선왕 1) 동지밀직사사가 되었다. 1313년(충숙왕 즉위년) 첨의찬성사로 치사(致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