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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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芝祥 |
영어음역 | Jeong Jis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활동 사항]
정지상(鄭芝祥)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누이동생이 원나라에 공녀로 가 그 인연으로 원에 자주 왕래하였다. 원에 숙위하러 간 공민왕을 시종하였고, 공민왕 즉위 후 그 공으로 누차 승진하여 감찰지평이 되었다. 전라도안렴사로 재직할 때, 원 순제(順帝)의 총애를 받던 야사불화(埜思不花)가 고려에 강향사(降香使)로 나와 가는 곳마다 횡포를 자행하였다.
또한 전주에 들어와 정지상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 정지상이 듣지 않자 옥에 가두고 욕을 보였다. 이에 정지상이 분노해 고을 아전들에게 속여 말하기를 “나라에서 이미 기씨(奇氏) 일족[고려 후기 부원 세력인 기황후 일족]을 모두 처형하고 다시 원나라와는 국교를 단절하게 되어 재상 김경직(金敬直)으로 원수(元帥)를 삼고 압록강을 수비하게 하였다. 이 사절을 다루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무엇이 두려워 나를 구하지 않는가. 앞으로 너의 주(州)를 조그마한 현으로 만들어 놓겠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믿고 고을 아전들이 몰려 들어가 결박을 풀고 정지상을 구해 나왔다. 정지상은 야사불화 일행을 잡아 가두고 야사불화가 차고 있는 금패(金牌)를 빼앗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왕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왕이 깜짝 놀라 정지상을 순군에 가두고, 전주목사 최영기(崔英起)와 읍리(邑吏) 등을 체포하였다. 야사불화에게는 궁중 술[內醞]을 주며 위문하고 금패를 돌려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원나라에서는 단사관(斷事官) 매왕(買往)을 보내 정지상을 문초하였다. 그러나 이후 왕은 기씨 일문을 처형하고 정지상을 석방해 순군제공(巡軍提控)으로 임명하였다. 정지상은 다시 호부시랑 어사중승(戶部侍郞御史中丞)으로 전임되었다가 판사(判事)가 되어 죽었다.
정지상은 원나라를 등에 업고 불의를 자행하던 부원 세력에 맞서 고려의 민족정기와 자주정신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하겠다. 부인은 과부로 담양(潭陽)에서 살다가 왜적에게 살해되었는데, 이에 아들 정혼(鄭渾)이 왜적에 대한 복수를 맹세하고 박위(朴葳)와 함께 대마도를 치는 데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