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74 |
---|---|
한자 | 鄭世裕 |
영어음역 | Jeong Se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 아들로 정윤당(鄭允當)과 정숙첨(鄭淑瞻)이 있는데, 정숙첨은 어머니가 연로하자 관직을 사직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봉양하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정세유(鄭世裕)는 1177년(명종 7) 대장군으로서 남적처치병마사(南賊處置兵馬使)가 되어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하였다. 명종 때 서북면 병마사로서 민간의 재물을 긁어 자주 내부(內部)에 헌납하니 왕이 친필로 쓴 조서를 보내 그를 칭찬하였다. 아들 정윤당을 이부(吏部)의 관리로 채용해 줄 것을 왕에게 청하자, 왕은 어리고 지식도 없는 정윤당을 이부 원외랑(吏部員外郞)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형부상서가 되어서는 민간의 명주실과 진기한 보화를 긁어 공물로 바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사적으로 사용했으며, 또 뇌물을 받고 호장(戶長) 임명을 바꾸기도 하여 탄핵되었다. 뒤에 대정 이금대(李金大)가 반란 음모 사건을 고발하고, 이와 관련되어 정세유 및 아들 정윤당, 정숙첨이 남해로 귀양을 갔다. 정숙첨은 훗날 다시 벼슬자리에 나아가 평장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