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65 |
---|---|
한자 | 鄭招 |
영어음역 | Jeong Cho |
이칭/별칭 | 열지(悅之),문경(文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열지(悅之), 시호는 문경(文景). 아버지는 사헌집의(司憲執義)를 지낸 정희(鄭熙)이다. 정심(鄭深)과 정황(鄭況) 두 아들이 있다.
[활동 사항]
정초(鄭招)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사헌집의와 판군자감(判軍資監), 승문원사(承文院事)를 차례로 역임하며 경연시강관(經筵侍講官)을 겸직하였다. 이후 이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 초 과학 사업에 중요한 소임을 맡아 정인지(鄭麟趾)·정흠지(鄭欽之) 등과 함께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연구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편찬했으며, 간의대(簡儀臺)를 제작·설치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그밖에도 왕명에 의해 『농사직설(農事直說)』·『회례문무악장(會禮文武樂章)』·『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을 편찬하였다.
천성이 총명하고 영매(英邁)함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고,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였다. 겸하여 관리의 재질이 있어, 대체로 국가의 의제(儀制)에 많이 참예하여 정한 바 있으며, 역산(歷算)·복서[卜筮]에도 모두 통달하였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434년(세종 16) 6월에 졸하자 이틀간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부의를 내려 주고 치제(致祭)하였다. 시호를 문경이라 하니, 배움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함이 문(文)이요, 의(義)에 의하여 절제(節制)함이 경(景)이다. 동궁도 또한 쌀과 콩 20석을 부의하였는데, 이는 정초가 일찍이 세자빈객(世子賓客)을 지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