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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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太白 |
영어음역 | Gim Taebak |
이칭/별칭 | 낭선재(浪仙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출생 시기/일시 | 15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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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사당|배향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213-3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
성격 | 공신 |
성별 | 남 |
본관 | 용궁 |
대표 관직 | 수문장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가계]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활동 사항]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세 때 임진왜란을 당하였는데, 다음해인 1593년(선조 26) 수문장으로서 집안의 종들과 마을의 장정 등 수백 명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관군과 합력하여 왜적과 맞서 싸워 여러 번 큰 공을 세웠으나, 화살이 모두 소모되고 힘이 다하자 세 장사(壯士)와 함께 진주성 촉석루에서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하고,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을 녹훈하였다. 진주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되었으며, 유허비(遺墟碑)가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