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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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岳陽亭-兪好仁- |
영어의미역 | Akyangjeong Pavili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석기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4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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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494년 |
배경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
성격 | 한시|서정시|칠언 율시|차운시 |
작가 | 유호인(兪好仁)[1445~1494] |
[정의]
1490년경 유호인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정여창의 은거지 악양정을 두고 읊은 차운시.
[개설]
「악양정(岳陽亭)」은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뇌계집(㵢溪集)』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일두집(一蠹集)』 권3의 시장(詩章)에 수록되어 전한다. 「악양정」의 서문을 보면, 정여창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근무할 때 함께 세자를 모시고 강의를 하였다고 하였으니, 유호인도 세자시강원의 직책을 맡고 있었던 듯하다. 정여창이 세자시강원설서가 된 것은 1490년(성종 21) 12월이었으니, 「악양정」을 지은 시기도 그때쯤일 것이다.
정여창은 벼슬에서 물러나 자신의 은거지인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심경을 토로하며 두보(杜甫)[712~770]의 「복거(卜居)」에 차운하여 시를 짓고, 유호인에게 화답시를 요구하였다. 이에 유호인이 화답시로 「악양정」을 지은 것이다.
유호인의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뇌계(㵢溪),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경상남도 함양 출신으로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이 되고,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부봉사(奉常寺副奉事)를 거쳐 1478년(성종 9) 사가독서한 뒤 1480년(성종 11)에 거창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 공조좌랑을 지내고, 1486년(성종 17)에 검토관을 거쳐 이듬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홍문관교리로 있다가 1488년(성종 19) 의성현령으로 나갔다.
시를 잘 지어 글을 좋아하는 성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94년(성종 25) 사헌부장령을 거쳐 합천군수로 재직 중 병으로 사망하여 경상남도 함양의 남계서원(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술로 『뇌계집』이 있다.
정여창은 유호인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이며, 동향의 벗이다. 39살 때인 1488년 섬진강 가에 악양정을 짓고 살다가 이후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천거로 출사하였다. 악양정은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정여창의 은거지를 가리킨다.
[구성]
칠언 율시의 구성법에 맞추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악양정」 앞에 긴 서문이 있는데, 유호인이 세자시강원에 근무할 때 악양정 주위의 경치와 함께 정여창이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뜻을 듣고서 정여창의 시에 차운해 짓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유호인은 악양정에 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정여창으로부터 악양정의 풍경에 대해 듣고서 그 산수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벗 정여창이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미련의 ‘서연(書筵)’은 세자시강원의 강연을 말하는 것으로, 하루에 세자가 세 번씩 만나기를 재촉하기 때문에 정여창은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저버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여창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악양정에는 빈 배에 달빛만 가득할 것이라고 읊은 것이다.
‘두곡(杜谷)’은 당나라 때 두씨(杜氏)가 살던 섬서성 장안현에 있는 종남산 기슭을 말한다. 두씨가 종남산 기슭에서 대대로 살아 붙여진 이름인데, 산수가 아름다워 묻혀 살 만한 곳의 대표적인 장소로 일컬어졌다. 또 ‘망천(輞川)’은 당나라 때 시인 왕유(王維)[699~759]가 은거하던 산수가 빼어난 곳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곳의 대명사로 쓰인다.
[내용]
일국귀심천진두(一掬歸心天盡頭)[하늘 끝 맞닿은 곳으로 돌아가고픈 한 줌 마음]
악양무처불청유(岳陽無處不淸幽)[악양은 한 곳도 맑고 그윽하지 않은 데 없다지]
운천력력편공흥(雲泉歷歷偏供興)[운무에 덮인 산수 깨끗하여 자꾸 흥을 돋우건만]
헌면유유야기수(軒冕悠悠惹起愁)[벼슬길에 있다 보니 근심만 꾸역꾸역 일어나네]
두곡림당춘일난(杜曲林塘春日暖)[두씨 살던 종남산 숲 속 연못 봄날이 따뜻했고]
망천연우모산부(輞川烟雨暮山浮)[왕씨 망천은 안개비 속에 저무는 산이 솟았네]
서연매피최삼접(書筵每被催三接)[서연에서 하루에 세 번 만나길 매번 재촉하니]
고부정전월만주(辜負亭前月滿舟)[뜻이 어긋나 악양정 앞엔 달빛만 빈 배에 가득]
[특징]
두보의 칠언 율시 「복거」에 차운한 시이므로, ‘두(頭)’, ‘유(幽)’, ‘수(愁)’, ‘부(浮)’, ‘주(舟)’를 운자로 그대로 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악양정」은 정여창이 은거지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악양정의 풍경을 상상해 노래한 유호인의 차운시로, 정여창과 악양정의 정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