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003 |
---|---|
한자 | 白武-巫- |
영어의미역 | The Story Of One Hundred Shaman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집필자 | 한양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무당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천왕할머니|법우 스님 |
모티프 유형 | 천황할머니를 사모하여 혼례를 올리고 여덟 명의 딸을 낳아 무당이 되게 한 법우 스님|백무동의 지명 유래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지리산 백무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백무 이야기」는 백무동(白武洞)이 원래 백 사람의 무당이 있었다고 하여 백무동(白巫洞)이라고 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수도승이던 법우(法雨) 스님이 어느 날 길을 잃고 천황(天皇)할머니와 인연을 맺어 혼례를 올리고 낳은 여덟 딸을 전국 각지로 보내 무당이 되게 하였으며, 그중 셋째 딸은 청학동(靑鶴洞) 삼신봉에 정착하여 하동골 무당의 시발이 되었다고 하는 무당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6년 하동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하동군지』의 1870~1873쪽에 실려 있다. 또한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의 444~449쪽에도 수록되어 있다. 「백무 이야기」는 청암면 조사위원 김삼주가 현지에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지리산 천왕봉(天王奉)을 바라보는 월마천(月馬川)에서 산자락을 타고 오르면 해발 800m에 있는 산마을이 백무동(白武洞)이다. ‘백무(白武)’의 옛 이름자는 ‘백무(白巫)’였다. 항상 백 사람의 무당(巫堂)이 있었다고 해서 ‘백무(白巫)’였는데 뒤에 사람들이 ‘백무(白武)’로 고쳤다.
지리산 일대를 지배한 여신 천황할머니는 자비심이 많고 모든 사람들이 잘 살기를 항시 원하여서 집안의 불행을 미리 방지해 주기도 하였고,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빌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두렵게 생각하고 준엄하게 공경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법우 스님이 수도(修道)를 하기 위해 지리산에 입산하였다. 깊은 동굴에 앉아 좌선(坐禪) 수도를 하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법우 스님은 수도에 정진하였으며 불심은 깊어만 갔다. 그러던 중 법우 스님이 좌선을 마치고 동굴을 나와 거닐고 있었다. 산 속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도취되어 걷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산 속 깊이 들어와 버렸다. 동서가 어디인지 구별할 수 없고 그저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숲이요, 들리는 것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뿐이었다. 법우 스님은 할 수 없이 천황할머니에게 기도하였다.
어느 순간 천황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복사꽃 같은 뺨에 칠흑 같은 머리카락, 반달 같은 눈썹과 물을 머금은 듯한 입술을 지니고 있었다. 천황할머니는 법우 스님을 스님이 수도하는 동굴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날부터 법우 스님은 천황 처녀만 보고 싶어졌고 다른 모든 일에는 뜻을 잃고 말았다. 법우 스님은 그녀에게 결혼해달라고 빌었다. 천황할머니는 그가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는 스님이기 때문에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법우 스님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는 천황과의 혼인에 모든 것을 걸었다. 천황할머니는 법우가 자꾸만 불쌍하게 보였고, 날마다 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결국 천황할머니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하였다. 천황할머니와 법우 스님이 혼인을 하게 되니, 법우 스님은 파계승이 되어 속세의 사람으로 돌아간 것이다. 백무에 살면서 그녀와의 사이에 딸 여덟을 낳았다. 이 딸들은 모두 높은 무당이 되어 전국으로 각각 보내졌고, 제각기 그곳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 중 셋째 딸은 벽소령을 넘어 청학동 삼신봉을 거쳐 하동에 정착하였다. 그로부터 하동 지방에 재앙이 들어도 함양, 미천, 백무동까지 찾아갈 필요 없이 천황할머니 셋째 딸의 영험으로 빌게 되었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셋째 딸이 하동골 무당의 시발이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백여 무당이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백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천황할머니를 사모하여 혼례를 올리고 여덟 명의 딸을 낳아 무당이 되게 한 법우 스님’, ‘백무동의 지명 유래’ 등이다. 「백무 이야기」에서 백여 명의 무당은 어떻게 발생한 것이고, 무당의 시원은 누구인가라는 점이 의문이다. 요즘에는 무당이 되려면 신어미에게 내림굿을 받는 절차를 거치지만 맨 처음 무당은 누구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무당이 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신화에서 이야기 되는 무당은 바리공주이다. 바리공주는 약수를 구해와 부모님을 살리고, 무장 선인과 일곱 아들, 바리공덕 할멈과 할아범까지 모두 제를 받아먹게 하고 자신은 만신이 되겠다고 한다.
「백무 이야기」에서 무당은 천왕할미와 법우 스님이 혼례를 하여 낳은 여덟 딸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왕할미는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지리산 산신이며 지리산 성모, 마고 등이라고도 불렸다. 거인이며 겉모습은 늙은 할머니의 모습을 하기도 하나 선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고할미나 천왕할미, 설문대 할망 등은 세상의 창조와 연관된 여성이다. 특히 지리산 성모로 천왕할미는 산신이다. 또 천왕할미를 웅녀가 민간 신앙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법우 스님은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불제자로 수행승이다. 그렇다면 무당의 발생은 민간 신앙의 천왕할미와 불교의 법우 스님이 만나 이루어진 민간 신앙과 불교의 습합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