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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801
한자 初等學校
영어의미역 Elementary School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원철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개설]

초등학교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제도상 국민이 가장 먼저 취학하고, 국민 생활에 필요한 가장 초보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 기관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취학 의무를 과하고 국가의 책임 아래 무상으로 교육을 시행하는 이른바 의무 교육 기관이며 취학 연령은 만 6세부터이고 교육 기간은 6년이다.

[변천]

우리나라 초등학교 역사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서당(書堂) 등이라고 본다. 현존하는 자료에 의하면 하동현은 1415년에 훈도 1인을 두었고, 1459년에는 향교 1개소, 훈도 1인에 생도가 30여 명, 서당이 몇 개 있었다. 1704년에는 향교 1개소, 훈도 1인, 생도가 70명이었다.

근대적인 학교 제도의 발달은 1904년 보명학교, 광명학교 등 사립 소학교 3개교의 설립에서 비롯되었다. 이어 1907년 군립 하동학교가 설립되었고, 1909년 사립 현산학교가 개교하였다. 현산학교는 1917년에 공립학교로 전환한 김양공립보통학교이다. 1914년에는 보통학교가 7개교[공립 1, 사립 6]로, 직원이 7명[한국 남 4·여 1, 일본 남 2명], 생도는 남 315명[공립 192, 사립 123], 여 76명[공립 45, 사립 31]이었다. 서당은 83개소가 있었고, 교원은 83명에 이르렀다.

6·25 전쟁 후 재건기를 맞은 하동 초등 교육은 1952년 4월 23일 교육자치제 실시와 더불어 교육 발전이 가속화되고 취학률이 급증하였다. 시설이 확충되어 1961년에는 초등학교 30개교, 분교 3교, 학급 수 350, 학생 2만 461명[남 1만 1167, 여 9,924), 교원 354명[남 316, 여 38]에 이르렀다. 1971년에는 초등학교 39개교, 분교 10교, 학급 수 492, 학생 수 2만 7036명[남 1만 3950, 여 1만 3086], 교원 수 542명[남 388, 여 154]에 기타 직원 53명에 이르렀고 1970년대에 총 51개교로서 최대 규모를 갖게 되었다.

1980년대 이르자 가족계획 홍보 사업의 효과와 새마을 운동, 경제 성장으로 인한 의식 변화에서 오는 출산 감소 현상으로 이농향도(離農向都)라는 인구의 사회적 이동, 특히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며 초등학교의 규모가 감소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박달초등학교, 신흥초등학교, 매계초등학교 등 총 27개의 학교 및 분교장이 폐교를 맞게 되었고, 폐교된 교사는 현재 농임산물 가공 및 보관 창고, 전통 건축 작업장 및 주민 편의 시설, 교육장, 전시장, 복지 회관, 수련원, 휴양 시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초등학교의 명칭은 소학교로부터 시작해 1907년 10월 3일에는 하동군수 및 유지들이 군립○○[하동]학교로 교명을 지은 이래, 1911년에는 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었다. 이후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다시 심상소학교로, 1941년 4월 제4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공립국민학교로 바뀌고, 1947년 2월 28일 미군정청 초등의무 교육 계획 이후에도 같은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1950년 6월 1일에 교육법에 의해 국민학교로 변경되었고, 1996년 3월 1일부터 현재의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교육 활동의 변화]

일제 강점기 초등 교육은 일본에 의한 일어 강요, 일본의 문물 주입, 일본 교사의 대량 고용, 교과서 통제 사상 감시 등을 통해 충량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주입식, 수동적 식민지 교육이 실시되었다. 한편 조선인들에 의해 우리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 교육 운동도 병행되었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는 문화 정치를 펴면서 교육 제도 면에서도 수정을 가하였고, 이를 계기로 억제되었던 초등 교육이 증가되었다.

광복 후 미군정이 출범되어 민주주의 교육이 실시되었으며 문교부가 조직되었다. 1946년 11월부터는 의무 교육도 실시되었으나 경제적 여건 등의 이유로 완전 실시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1950년대의 주요 교육 활동은 반공 통일의 사상 교육 강화와 도의의 생활화 교육, 교육 과정 운영의 내실화 등에 관심을 갖고 심혈을 기울였다. 생산 교육, 연구학교의 운영도 있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과학 진흥 교육이 제고되기 시작했고 교육 내용의 심화를 위해 현장 교육 연구 활동, 학예 발표 대회와 기능장 제도, 학력 급수제 실시, 향토학교 운동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민족중흥의 새 역사 창조 교육에도 관심이 증대되었으며 학습 자료의 개발과 활용, 도서관 시범 운영, 건강 교육, 학교 운영의 특색 운영 등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또한 A.V 센터가 설치되어 영사기, 녹음기, 현등기가 보급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는 국민 교육 헌장 이념의 생활화로 교육의 체제를 쇄신하고 국적 있는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참다운 새 한국인 육성을 위해서 전력투구하였으며 자연보호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알찬 교육 참된 인간을 기본 방향으로 선진 조국 창조를 위한 투철한 국가관과 자주 준법, 근검절약 정신을 실천하는 새 한국인 육성에 두고 교육을 펼쳐나갔다.

1990년대에는 국혼을 심는 교육, 즐거운 학교 만들기, 과학 탐구반 운영 및 과학적 탐구능력 배양, 학생 수련 활동, 도덕성 회복을 위한 효 교육, 책가방 없는 날 운영, 이동학교 운영, 열린 교육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0년대에는 세계화 시대에 알맞은 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외국어 교육을 중시하며 차사랑, 예사랑, 하동사랑의 실천으로 물길과 꽃길 고장의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인프라를 활용한 차별화된 체험 학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황]

2010년 3월 1일 현재 하동군의 초등학교는 하동초등학교, 화개초등학교, 쌍계초등학교, 악양초등학교, 적량초등학교, 횡천초등학교, 고전초등학교, 고남초등학교, 진정초등학교, 노량초등학교, 궁항초등학교, 갈육초등학교, 진교초등학교, 양보초등학교, 북천초등학교, 청암초등학교, 묵계초등학교, 옥종초등학교,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등 19개교이며 모두 공립이다. 학급 수는 151학급[특수 학급 9학급 포함], 학생 수는 2,350명, 교원 수는 220명에 이른다.

[참고문헌]
  • 『하동교육사』 (경상남도 하동교육청, 2000)
  • 경상남도 하동교육지원청(http://www.gnhd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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