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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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下洞-都堂告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영당말 |
집필자 | 김덕묵 |
성격 | 민간신앙|마을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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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7월 그믐과 10월 초하루 |
의례장소 | 구름산 줄기 도당고개 |
신당/신체 | 도당나무 |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영당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소하동 영당말 도당고사는 매년 음력 7월 그믐과 10월 초하루에 도당할머니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영당말과 큰말, 작은말도 함께 지냈으며, 소를 잡을 만큼 도당고사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영당말은 청백리에 선정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 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연원 및 변천]
소하동 영당말 도당고사는 6·25전쟁 전까지는 ‘짝귀’라고 불리는 박수가 웃말에 살고 있었고 굿도 성대히 치렀으나 그가 죽자 도당굿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기독교인의 증가와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러한 중에 1·4후퇴 때 이 마을에 정착한 무녀 김선화의 정성으로 도당굿이 이어졌다. 마을에 궂은 일이 자주 생기고 불상사가 있어 1986년 4월에 도당굿을 한 바 있었으며, 전주이씨 익녕군파 선현 묘와 현대아파트 사이 능선에 있는 도당고개에서 도당고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1989년 이 일대에 구획 정리 사업으로 도당고개가 사라지자 1992년부터는 더 이상 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도당굿을 하면 반드시 소를 잡았으나 약 20여 년 전부터는 소머리만 사서 진상하였다고 한다. 소하동 영당말 도당고사는 1986년에 발족되어 ‘광명도당놀이’로 개칭하여 그해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 광명시의 대표적인 전통 민속놀이로 출전한 바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소하동 영당말 도당고사는 소하동 구름산 줄기 도당고개에 있는 도당할머니 나무에서 행하였다. 1980년 초 산 주인이 도당나무를 베자 훗날 산 주인의 아들이 식물인간이 되었고, 나무를 벤 사람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신체는 짚으로 만든 터주가리를 세웠다.
[절차]
소하동 영당말 도당고사를 지낼 날짜가 다가오면 마을 회의를 열어 준비한다. 마을 회의는 이장이 주재하는데 당주의 선정과 굿에 소요되는 경비의 추렴 문제 등을 논의한다. 당주는 덕망이 있고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당주로 선정된 사람은 자기 집 앞에 황토 세 무더기를 양쪽으로 뿌리고 대문에는 부정함을 막기 위해 금줄을 맨다. 당주는 큰말과 작은말에서 번갈아 가면서 맡고 영당말에서는 맡지 않는다.
당주는 선당주와 앉은당주를 선정한다. 선당주는 바깥당주라고도 하며, 도당굿에 사용할 물건을 구입하고 돈이나 쌀을 추렴하는 일을 한다. 앉은당주는 조라술을 빚고 떡을 하는 등 음식을 담당한다. 당주는 정결한 옷을 입고 바랑을 메고 삿갓을 쓰고 다니면서 제의에 소요될 경비를 추렴하는데, 이는 마음을 정결히 하며 부정한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선당주는 제의에 소용되는 경비를 소가 있는 농가에서는 쌀 2되, 소가 없는 농가에서는 쌀 1되를 거두어 제의 경비로 충당한다. 이렇게 마련한 경비는 대부분 소를 사는 데에 들어가고, 이 밖에도 조라술과 떡·생선·삼색 과일 등을 준비하는 데에 쓴다. 소는 누렇고 크고 좋은 놈으로 구입하여 머리는 제상에 올리고 소고기는 각 가정에 골고루 나누어 준다.
제의는 밤 10시 경에 올리며, 초저녁쯤이면 산으로 올라간다. 제관은 모두 7~8명인데 파란 도포인 제관복과 검정색 제모를 썼고, 축문은 축관이 읽는다. 전체 제의는 제관이 주관하며, 제의가 끝난 후 무녀가 마을의 안녕을 빈다. 도당굿은 무당이 담당한다. 굿은 부정거리, 감응거리, 상산거리, 불사거리, 칠성거리, 성주거리, 조상거리, 창부거리, 대감거리, 서낭거리, 군웅거리, 뒷전거리 순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