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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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梧里李元翼影宇 |
영어공식명칭 | Oriyiwonigyeongu |
영어의미역 | Shrine of Yi Wonik |
이칭/별칭 | 이원익 사당,이원익 영우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현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6년 12월 24일 - 오리이원익영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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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오리이원익영우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사묘 재실 |
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93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4 |
소유자 | 충현문화재단 |
문화재 지정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사당.
[개설]
이원익(李元翼)의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이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이억재이다. 1569년(선조 2)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판서, 이조판서, 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유명하다.
[변천]
1630년(인조 8)에 2칸 초가인 이원익의 집에 비가 새자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는데, 1693년(숙종 19) 인조가 하사한 집터 위에 사당을 건립하여 ‘오리영우(梧里影宇)’라 편액하였다. 편액은 숙종 때에 이조판서를 지냈고 당대 해서(楷書)에 일가를 이룬 근곡(芹谷) 이관징(李観徴)이 썼다. 「이원익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을 이곳에서 오랫동안 모셨으나 1970년대 말 도난당한 적이 있어, 현재는 13대 종손이며 충현박물관 설립자인 이승규가 보관하고 있으며, 영당에는 모사본이 진열되어 있다.
[위치]
오리이원익영우는 광명시 소하2동 오리로 변의 주택가에 있는 오리 이원익 유적지 내에 종택(宗宅)과 함께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형태]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으로 평면은 정방형인데, 앞면의 툇간 때문에 측면은 2칸이 되었다. 앞면 창호는 세살분합문이고, 측면과 뒷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었다. 장대석 기단과 초석은 1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세장한 부재 단면, 익공의 형태, 방화벽 등은 19세기 말의 수법이다. 구조는 앞쪽에 툇간이 있는 5량(樑) 가구이며 내부에 영정이 봉안된 감실(龕室)이 있어 특이하다. 사당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고 앞쪽에는 내삼문이 있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내삼문은 평삼문 형식인데 기둥머리의 결구 수법에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현황]
사당 앞에는 이원익의 검소함에 임금이 감동하여 지어준 관감정(觀感亭)이 있다. 동편에는 삼현사라 불리는 강감찬(姜邯贊)·서견(徐甄)·이원익의 신위를 모시는 충현서원지[경기도 기념물 제80호]가 있다. 오리이원익영우는 1996년 12월 2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충현문화재단에서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리이원익영우는 작은 규모의 사당이지만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당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