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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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apart|apartment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5층 이상의 공동 주택.
[개설]
아파트는 19세기 영국에서 도시 빈민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서울 충정로에 있는 충정아파트로 1930년 무렵 지어졌다. ‘아파트 공화국’으로도 불리는 대한민국은 현재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광명 지역의 주거 형태를 보면 압도적으로 아파트가 우위를 점하며 시간이 갈수록 그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1970년대~1980년대 초 광명 지역 아파트]
광명 지역 최초의 아파트는 광명사거리에 있는 광명아파트이다. 1968년 개봉 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당시 건축되어 1971년 준공하였다. 원호처[현 보훈처]에서는 광명 지역에 광복회, 미망인회 등 원호 대상자를 위한 주택을 조성하였는데, 철산동의 광복아파트가 이때 건립되었다. 광복아파트는 1998년 재개발되어 광복현대아파트가 되었다. 1981년 광명시로 승격하고 철산동을 중심으로 철산주공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1980년 12월 철산3단지 13평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의 회고를 보면, 당시 11평, 13평, 15평형을 분양하였고, 분양가는 13평의 경우 5층이 420만 원, 2층과 3층이 510만 원이었으며 미분양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연탄을 때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연탄가스 냄새가 심하게 나서 이사하는 집도 많았으며, 나중에 아파트 주민들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시가스를 설치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아파트들은 대부분 재건축되었으며, 이제는 입지가 좋은 수도권의 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광명 지역 아파트의 역사]
1981년 시로 승격된 광명시는 개청 당시 인구가 15만 3997명이었다. 2021년 현재는 인구가 두 배 정도로 증가하였다. 1981년 당시 광명시는 단독주택 1만 2798호, 아파트 2,020호, 연립주택 2,871호를 보유하여 주택 보급률은 53%였다. 당시는 도시 기반 시설도 취약하여 도로포장률은 38%에 불과하였다. 상수도 공급이 부족하여 27%가 서울시 수도를 사용하였으며 사설 상수도가 16%, 군 시공의 지하수 사용이 8%, 51%에 이르는 대다수 주민은 우물을 이용하였다. 서울의 위성 도시 역할을 하였던 광명 지역은 무엇보다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는 배후지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면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광명시 최초이자 경기도 최초의 아파트는 광명아파트로 1971년에 준공되었다. 광명아파트는 1997년 재건축되어 광명한진아파트가 되었다.
1981년 12월에는 철산동에 6,280가구의 아파트 단지가 준공되었다. 1983년 철산동 43만 7000평[144만 4628.09㎡] 부지에 7,100여 가구의 신축이 완료되어 오늘날 철산동의 기틀이 되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광명7동 도덕산 주변 8만 9000평[29만 4214.87㎡]과 소하2동 8만 8000평[29만 4214.87㎡]에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실시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철산동과 하안동에 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되며 광명의 중심지가 철산동 쪽으로 이동하였다.
철산동과 하안동의 아파트 건설은 1992년까지 행해져서 철산동에 8,600가구, 하안동에 2만 2000가구가 건설되었다. 하안동에 들어선 3,284가구는 저소득층의 주거를 위한 영구 임대 아파트로 조성되었는데 광명시 거주자가 2,062호, 서울 거주자가 1,222호를 배정받았다. 당시 아파트 건설이 활발해지면서 투기가 심해 부동산 투기 조사반이 투입되어 조사를 하였다. 택지 개발 과정 중 주택공사가 하안동 택지를 매각하며 폭리를 취하여 344억 원의 차익금을 차지했다는 비난이 일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시범 공단이 하안동에 아파트형으로 건립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철산동과 하안동의 택지 개발 사업이 끝난 1991년에는 인구가 늘어나 하안동은 3개 동으로 분리되었다.
1995년에는 광명동의 주공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되어 1998년 고층의 아파트가 신축되었다. 경기도 최초의 주공아파트인 광명주공아파트는 광명 최초의 민간 재건축 아파트로도 기록되었다. 2004년 7월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며 피해가 심했던 삼각주마을에 아파트형 공장이 건립되었으며, 아파트 4개 동 401가구가 들어서 면모를 달리하였다. 1995년부터 행해진 철산4동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마무리되어 도덕파크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다.
1995년에는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철산동과 하안동의 저층 아파트 매매가가 200만~500만 원 정도 상승하였다, 지은 지 20년이 된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움직임과 관련한 상승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철산동 아파트 중 4,192가구는 평당 1,000만 원이 넘게 되었다. 2003년 역세권과 소하동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3월에 역세권 70만 평[231만 4049.58㎡]의 택지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소하동 30만 평[99만 1735.53㎡]에 대한 주택 건설 사업이 승인되었다. 그해 4월에는 광명시가 투기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광명시의 아파트 가격이 상반기에만 19.7% 급등하여 경기도에서는 최고가를 기록하였다. 2004년에는 하안주공본1단지와 하안주공본2단지, 철산주공2단지와 철산주공3단지의 재건축이 승인되었다. 당시에도 이들 지역은 투기 지역으로 재지정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아파트 전세가와 토지가가 상승하여 서민들의 고달픔이 가속화되었다. 소하동 일부 지역은 1973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그린벨트 구간이 2004년부터 일부 해제되어 새로운 개발 기대가 커졌다.
[광명시의 동별 아파트 현황]
1968년 7월 18일부터 1972년 8월 5일까지 광명리와 철산리 지역 서울도시계획 계봉 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에 따라 1970년 12월 4일 광명아파트 준공식이 있었으며 이 자리에 정일권 국무총리가 참석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철산동 지역은 1981년 이후 추진된 구로 공단 배후 도시를 위한 주공아파트 건설과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다. 철산3동은 1982년부터 근로자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1983년 철산 지구 개발 계획을 시작으로 철산1동, 철산2동, 철산3동에 아파트가 지속적으로 건설되고 1986년 철산2동과 철산3동의 저층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재건축도 이루어졌는데 철산3동의 주공1단지와 주공4단지도 재건축되었다. 근래에는 뉴타운 사업 등으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소하동 지역도 기존의 동양아파트, 삼익아파트 등과 함께 2005년에 우림필유아파트 218가구, 2006년 금호어울림아파트 406가구 등의 입주가 있었다.
하안동 일대는 자연 마을이었으나 1986년부터 택지 개발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 하안아파트 단지의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면서 4개 동으로 분동되었다. 2006년부터는 저층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이 시작되어 하안1동 주민들이 상당수 지역을 떠났으나 2010년 아파트 재건축이 완료되어 인구가 다시 늘었다. 하안1동은 아파트와 단독 주택으로 구성되었으며 하안2동은 아파트 단지, 하안3동도 전체가 아파트 단지로 대단위 영구 임대 아파트와 아파트형 공장이 혼합되어 있으며 하안4동은 전체 가구가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학온동 지역 일대는 아파트가 없이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공세동, 뒷골, 노리실, 장터말 일대는 광명시흥테크노밸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2021년 후반부터는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떠나고 이후 예정된 순서대로 개발 사업이 착수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학온동 일대의 거주 유형도 점차 아파트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1970년 광명동에 준공한 광명아파트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 철산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며, 1990년대에는 하안동 일대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노후화된 아파트는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단지의 틈바구니 속에 남아 있던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지에서도 조건만 되면 속속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자연 마을마저도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다면 그야말로 광명시는 아파트 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