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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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壽 |
영어음역 | Gim Eungsu |
이칭/별칭 | 분성군(盆城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시조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를 지내고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지고, 명종 때에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이다.
[활동사항]
김응수(金應壽)[1567~?]는 사복시 잡직인 마의(馬醫)에서 조관(朝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수도 한양을 버리고 파천을 감행한 선조를 모시고 황해도 평산까지 호종을 하여 그 공을 크게 인정받았다. 1592년 5월 4일 선조가 평산에 도착하여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하급직인 김응수와 오치운만이 자신을 호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이들을 동반(東班)에 등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사복시의 주부[종6품], 판관[종5품], 첨정[종4품]까지 오르자 거센 반발이 계속 있었는데도 선조는 이를 물리치고 김응수를 신임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4년(선조 38) 6월 25일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봉되고 분성군(盆城君)으로 봉해졌다. 후손들이 경기도 광명시에 세운 재실인 영모재(永慕齋)에 모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