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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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慕齋 |
영어의미역 | Yeongmojae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648-1[동창로 2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석 |
성격 | 재실 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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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재실]|1고주 5량 맞배지붕[사당] |
건립시기/일시 | 1852년[건립]|1940년 3월[개축] |
정면칸수 | 4칸[재실]|3칸[사당] |
측면칸수 | 1.5칸[재실]|2칸[사당]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648-1[동창로 23] |
소유자 | 김우택 |
문화재 지정번호 | 광명시 향토유적 제5호[영모재 및 분성군 김응수 가전 고문서] |
문화재 지정일 | 2005년 1월 21일 |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응수의 사당.
[개설]
영모재(永慕齋)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응수(金應壽)[1567~?]의 공덕을 기리고,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제사용 건물이다.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 사당(祠堂)이라 부르기도 하며,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제의(祭儀) 기능이나, 제사에 필요한 도구와 각종 물품을 보관, 관리하는 역할도 한다.
[위치]
온신초등학교 앞 능촌사거리에서 남쪽으로 터널을 지나 500m 정도 내려오면 왼쪽으로 승문공업사 입구가 있는데, 이 승문공업사 북쪽에 영모재가 있다.
[변천]
영모재는 1852년에 김응수의 11대손인 김계욱이 지어놓은 사당으로, 처음에는 작은 초가였던 것을 1940년 10월 대지 297.52㎡에 봉안전, 내실 46.28㎡로 개축하였다. 원래는 김응수의 후손이 김포에 거주할 무렵부터 있었으나 11대에 이르러 현재의 위치로 이사를 하면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개축 상황을 기록한 문서로 「영모재기」가 사당 내에 걸려 있어 내력을 살필 수 있다. 내부 상량묵서에는 1940년 3월 20일 입주하였고, 상량일은 4월 1일이라 기록되어 있다.
[형태]
영모재는 약간 경사진 대지에 맞추어 앞면으로부터 삼문과 재실, 사당 건물 등이 세워져 있고, 외곽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좌향은 인좌신향(寅坐申向)의 남서향이다. 삼문은 정면 3칸의 건물로, 마루방은 제관의 숙소로서 옷을 갈아입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재실은 정면 4칸에 측면 1.5칸으로 전퇴가 붙어 있는 건물이며, 평면으로 볼 때 왼쪽으로부터 마루방, 대문간,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량가 구조에 홑처마로 팔작지붕 건물이다.
영모재는 장대석을 외벌대로 쌓아 기단을 만들고 초석을 다듬어 그 위로 기둥을 세웠는데, 앞면은 원주 기둥이나 뒷면은 각주로 세워져 있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이며, 앞뒤 툇간을 두어 4분 변작(四分變作)으로 가구한 집이다. 앞면을 개방한 사당으로 안에는 감실과 탁자를 두고 영정과 신위를 봉안하였다. 1고주 5량의 초익공집으로 맞배지붕이며, 정면 창호에는 모두 4짝의 분합문을 설치하였다.
[현황]
사당의 앞면 왼쪽에 후손이 거주하는 가옥이 있으며, 가옥 앞으로는 1996년에 조성된 김응수 신도비가 있어, 김응수의 행적과 치적을 살필 수 있다. 영모재 및 분성군 김응수 가전 고문서는 2005년 1월 21일에 광명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소유 및 관리는 김우택이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모재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나 전통적인 양식을 지켜 건립하였으며, 사당의 배치와 구성에 있어 전형적인 전통적 제례 공간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가구 수법과 실용성을 강조한 현대적인 기법과 재료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