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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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學生獨立運動記念塔光州自然科學高等學校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능안로 30[오치동 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별 |
건립 시기/일시 | 1959년 6월 10일 -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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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2011년 11월 3일 -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건립 |
이전 시기/일시 | 1976년 9월 30일 -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1월 -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지정 |
현 소재지 |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능안로 30[오치동 5] |
성격 | 기념탑 |
크기(높이) | 8.73m[높이] |
관리자 |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
[정의]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여 구속되고 고문당한 광주공립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
[개설]
1926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인 장재성과 왕재일,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인 박인생 등은 식민지 교육을 반대하고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성진회(醒進會)를 결성하였다.
1929년 11월 3일 시작된 1차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이 끝난 후 일본 경찰은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48명, 광주중학교 학생 8명,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 11명, 광주사범학교 학생 5명 등 총 72명을 검거하였다. 그중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39명,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 1명을 형무소에 가두고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보안법 위반의 죄명으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학생들은 2차 광주학생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 또한 "철창에서 신음하는 교우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다가 광주고등보통학교 앞에서 강제 해산되었다.
[건립 경위]
1959년 6월 10일 개교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광주농업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성금을 모아 전라남도 광주시 임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옛 교정에 세웠다. 1974년 9월 30일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서산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으로 학교가 이전함에 따라 이건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안에 있다.
[형태]
부지면적 902㎡에 원형의 기단 위로 4개의 사각형 기단을 쌓아 기다란 사다리꼴의 탑신을 세운 형태이다. 높이는 8.73m이며, 탑의 맨 꼭대기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횃불 모양의 조형물이 장식되어 있다. 기단 정면에는 교복을 입고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동판에 조각되어 있다.
[금석문]
기념비에는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의 굴욕적인 식민지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불평이 점차 높아가던 중 광주고보생의 일본인 중학생과의 충돌이 도화선이 되어 이 고장 광주에서 일어났던 항일독립운동이다. 이로 인해 광주농고를 비롯한 280여 명의 학생이 구속되어 많은 학생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기존에 세워진 기념탑은 교내 광주학생독립운동역사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새로운 기념탑 조성의 염원을 모아 2011년 11월 3일 기념탑을 새로 세웠다. 2002년 11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빛고을의 젊은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