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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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主敎 |
영어음역 | Cheonjugyo |
영어의미역 | Roman Catholic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호상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
[변천]
김천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유배자 혹은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자들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김천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시기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로 보여 진다. 천주교 박해에 관한 정부 측 기록으로 신유박해 직후에 쓰여 진 『사학징의』에는 충청도에 살던 천주교인 박춘산이 김천으로 귀양 온 사실과 부산 동래에서 현계탁이 김천 증산으로 귀양 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인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김천에 살던 유시몬 외 5명의 천주교인이 충주 포교에 체포되어 처형된 사실도 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경기도·충청도·경상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에 의해 지금의 황점, 마구실, 장자터, 서무터, 마잠, 부상, 곤천이, 지대골[향천] 등 여러 지역에서 신자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마잠[현 김천시 지좌동 지좌성당 부근]은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이 태어난 곳이다. 그 외 마을 별감을 지낸 서토마와 허요셉, 권종웅 등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신자촌을 이룬 곳이다. 그리고 1878년 조선교구 제7대 교구장 리델 주교가 체포될 때 부주교인 블랑 주교가 박중현과 함께 삼도봉 아래 개화동[김천시 부항면 대야동, 속칭 대동]에서 피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1882년 말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로베르(Robert)[김보록] 신부가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의 교우촌을 중심으로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를 하는 과정에서 김천 지역의 신자촌에도 전교를 하였다. 1985년 칠곡군 왜관읍에 조선교구의 11번째 본당인 가실성당이 설립된 후 초대 파이아스(C. Pailhasse)[하경조] 신부와 2대 신부 김성학 알렉스 신부에 의해 경상도 북부 지역에 대한 전교가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김성학 신부는 김천 지역이 농업이 발달된 지역으로 안정적 인구를 확보하고 있고, 또 경부선이 부설되면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하여 김천에 새로운 성당의 건립을 추진하였다.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여러 차례 건의하여 마침내 승인을 받은 김성학 신부는 김천시 지좌동[일명 마잠]에서 민가를 빌려 전교를 시작하였다. 이후 교세가 확장되자 1907년 황금동에 새 성전을 지어 김천본당의 근거지를 옮겼다. 이 성당이 지금의 김천황금성당이다. 김성학 신부는 김천본당의 주임 신부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1907년 성의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활동도 전개하였다.
김천본당의 설립으로 가실본당과의 관할 지역을 나누어 상주, 문경, 선산 등 경상도 서북부 지역인 낙동강 서안 지방을 김천본당의 관할 지역으로 정하였다. 이후 교세가 확장되는 가운데 초기의 본당이 협소하여 1934년 김승연 신부의 주도로 기존의 기와 성당을 허물고 붉은 벽돌의 고딕식 성당을 신축하였다.
이후 김천은 황금동의 김천본당과 지좌공소 체제로 1935년까지 유지되어 오다가 1935년 지좌공소가 다시 지좌본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신부로 김동인[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1945년 다시 지좌본당이 공소로 전락하였으나 1970년에 이르러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황금동의 김천본당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55년부터 약 1년간 사목을 담당한 곳이기도 하다. 뒤를 이어 1956년 성베네딕도 수도원 소속의 탁세영[파비안] 신부가 7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재임하던 중 새로운 성당 신설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1958년 10월 김천시 평화동에 평화성당이 건립되었으며 탁세영 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였다.
천주교 평화성당은 탁세영[파비안] 신부의 협조 요청에 응한 독일 자선가들과 김천 지역 신자들의 기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천주교 평화성당이 분립되면서 김천본당의 이름도 행정 구역의 명칭을 따라 황금성당으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평화성당에 1999년 김천 지역 5개 성당의 신부 등이 함께 거주하면서 지역 신자를 위한 다양한 전교 활동을 실시하고자 김천 지역 공동 사제관이 건립되었다.
이후 김천황금성당으로부터 1968년 김천시 지례면에 지례성당, 1996년 김천시 신음동에 대신성당, 2000년 김천시 개령면에 신룡성당이 분리 신설해 나갔다. 그리고 천주교 김천황금성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은 2000년에 고딕 양식의 옛 성당을 보전하는 가운데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전을 세웠다.
[현황]
2010년 11월 말 현재 김천시에는 천주교 김천황금성당, 천주교 평화성당, 천주교 지좌성당, 천주교 대신성당, 천주교 지례성당, 천주교 신룡성당 등 본당 6개소가 있으며 준 성당으로 부상성당 1개소가 있다. 그리고 서무터공소, 황점공소, 부항공소, 대덕공소, 개령공소, 감문공소, 아천공소, 광천공소, 신암공소, 직지공소, 운곡공소 등 11개소의 공소가 있다. 2010년 현재 김천의 천주교 신도 수는 1만 970여 명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