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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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卜智謙 |
영어공식명칭 | Bok Jigyeom |
이칭/별칭 | 사귀(沙貴),사괴(砂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양유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남석 |
추모 시기/일시 | 993년 - 복지겸 태사 추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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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397년 - 복지겸 숭의전 배향 |
출생지 | 복지겸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
거주|이주지 | 복지겸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
수학지 | 복지겸 수학지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
묘소|단소 | 복지겸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순성로 73[양유리 677-1] |
사당|배향지 | 무공사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순성로 73[양유리 677]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면천(沔川) |
대표 관직 | 고려 개국 일등 공신 태사(高麗改國一等功臣太師)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출신의 고려 개국 공신.
[개설]
복지겸(卜智謙)[?~?]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우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고려 초 환선길과 임춘길의 모반 사건을 사전에 알아내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가계]
복지겸은 면천 복씨(沔川卜氏)의 시조이다. 초명(初名)은 사귀(沙貴) 또는 사괴(沙塊, 砂塊, 沙蕢)라고 한다.
[활동 사항]
복지겸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출신이다. 『면천 복씨 대동보』에 따르면, 신라 말에 학사(學士) 복한림(卜翰林)이라는 인물이 당나라에서 건너와 현재의 면천면에 정착하여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고 백성을 보호했는데, 복지겸은 복한림의 후손이라고 전한다.
복지겸은 태봉을 건국한 궁예(弓裔)의 마군 장군(馬軍將軍)이었다. 궁예가 포악무도(暴惡無道)하여 민심을 잃자, 918년(태조 1)에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과 함께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웠다. 이후 개국 일등 공신(開國一等功臣)에 봉해졌고, ‘사귀(沙貴)’라는 이름도 ‘지겸(智謙)’으로 고쳤다.
그 후 마군 장군 환선길(桓宣吉)의 반역 사건을 사전에 탐지해 태조에게 알려 진압하게 하였고, 순군리(巡軍吏) 임춘길(林春吉)이 청주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음을 알고 태조에게 알려 모두 평정시켰다. 이와 같이 복지겸은 고려 초 국가와 왕실이 안정되는 데 많은 공을 세우고, 노년에 이르러 혜성군으로 낙향했다.
일제 강점기에 서술된 『당진군사(唐津郡史)』에 의하면 복지겸의 주택은 면천 공립 보통학교의 부지 내에 있었다고 한다. 『당진군사』가 기록되던 당시까지 복지겸의 주택이 현지에 있었는지 아니면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의 면천 객사와 현재의 은행나무와 인접하여 복지겸이 거주하던 주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면천 공립 보통학교는 면천 객사 건물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묘소]
복지겸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순성로 73[양유리 677-1]에 있다.
[상훈과 추모]
복지겸의 시호는 무공(武恭)이며, 993년(성종 13)에 태사(太師)에 추증되었다. 조선 왕실에서 1397년(태조 6)에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숭의전(崇義殿)을 세워 고려 초 7명의 왕과 신하들을 배향할 때 복지겸도 그 대상이 되었다. 또한 면천 복씨 대종회에서는 1991년 11월 당진시 순성면 양유리에 ‘고려 개국 일등 공신 태사 복무공 휘지 겸 사적비(高麗開國一等功臣太師卜武恭公諱智謙事績碑)’와 복지겸의 묘역을 정비하였고, 당진군과 충청남도의 지원을 받아 복지겸을 제향하는 사당인 무공사(武恭祠)와 부대시설을 2007년부터 건축하기 시작하여 2008년 12월에 완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