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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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多斯邑 伊川里 伊內- 秋溪秋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영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추계 추씨 집성촌.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이내마을은 추계추씨(秋溪秋氏) 집성촌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인 이내마을은 1520년(중종 15)경 통훈대부(通訓大夫)를 지낸 추계인 추상의(秋尙義)의 7대조 추세(秋世)가 입향하여 살면서 추씨들의 세거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약 80여 가구 중 60여 가구가 추계추씨였으나, 지금은 50여 가구의 추씨들이 살고 있다. 인근에 있는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굼마 마을도 추계추씨들의 세거 집성촌이다.
[형성 및 변천]
이천리 추계추씨는 시조인 노당 추적(秋適)의 후손들이다. 노당은 1260년(원종 1)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안동 서기·직사관을 거쳐 좌사간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에 환관 황석량이 권세를 이용하여 자신의 고향 합덕부곡을 현으로 승격시킬 때 그 서명을 거부하여 순마소(巡馬所)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 후 민부(民部) 상서(尙書)·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을 역임하고, 시랑 국학 교수(侍郞國學敎授)로 재임할 때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엮어 가르쳤다. 안향(安珦)과 더불어 정주학(程朱學)의 도입을 꾀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 서원(仁興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인흥 서원에는 추적이 지은 『명심보감』 판목이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현황]
이천리에는 추계추씨들의 세거 집성촌임을 상징하는 문화 경관들이 있다. 시조인 노당 추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경로재(景露齋), 효자이자 유학자인 동산 추상의(秋尙義)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이천재(伊川齋), 동수공 추정서(秋正瑞)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고동재와 같은 건축물과 추상의의 유덕을 기리기 위한 비각인 영사각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