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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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消災寺 |
영어공식명칭 | Sojae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휴양림길 228[용리 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개설]
소재사(消災寺)가 들어선 비슬산은 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시대에는 포산(包山)이라고 불렀으며, 예로부터 정성 대왕(靜聖大王)이라는 산신이 사는 성지로 알려져 있다. 소재사라는 이름은 현세의 재난을 없애 주는 곳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약한 인간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재난의 제거를 기원하는 원초적인 종교적 태도를 영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습합은 소재(消災)의 길을 제시하고 불문(佛門)에 이끄는 방편은 되지만, 소재의 처방만 일러 주고 불리(佛理)를 교시하지 않을 때 불교는 곧 무속(巫俗)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한 소재사는 옛날 이 절 뒤쪽 비슬산 정상 부근에 있는 대견사의 식량이나 각종 생활용품·의식용품 등을 공급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소재사 앞 터에는 방앗간을 비롯하여 두부 공장, 기왓골 등도 있었다고 한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소재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나,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1358년(공민왕 7)에 진보 법사(眞寶法師)가 중창한 뒤 1457년(세조 3)에 활륜 선사(活輪禪師)가, 1510년(중종 5)에 선주외암(善珠外巖)이 각각 중건하였다. 1701년(숙종 27)에 청심(淸心)이 중창하였으며, 1841년(헌종 7)에는 완산(玩山)이 중창하였다. 그 뒤 1857년(철종 8)에 법로 화상(法盧和尙)이 중수하였으며, 1900년(고종 37)에는 왕산이 중창하였다. 1976년에는 대웅전을 해체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중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인 대웅전은 1978년에 달성군에서 보수하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인 명부전은 근래에 허물어져 다시 중수하였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 비슬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소재사 대웅전(消災寺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전면 벽체는 3칸 모두 문으로 구성하였는데 어간(御間)에는 네 짝 여닫이, 향 툇간에는 두 짝 여닫이문을 두었다. 배면에도 양쪽 툇간에 한 짝의 여닫이문을 두었는데 정면과 배면 모두 문짝이 최근에 교체되었으며, 문틀 일부도 교체가 된 것이다. 다만 배면 어간 두짝문에 연귀 맞춤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배면 3칸 모두에 창호를 둔 것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까지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웅전 안에는 각종 탱화(幀畵)와 금고(金鼓), 1960년대에 주조된 범종[높이 41㎝, 지름 30㎝]이 있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불단을 꾸몄는데, 불단 위에는 주불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연등불을 모셨다. 내부 천장은 격자 모양의 우물 반자로 하였는데, 불단 위에 따로 닫집을 만들지는 않았다. 건물의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박공 면에 풍판을 달았으며, 건물 장식으로 정면에는 금단청을, 측면과 배면에는 모로 단청을 하였다.
명부전 안에는 소재사 목조 지장보살 좌상(消災寺木造地藏菩薩坐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복장기에 의하면 1674년(현종 15)에 제작되었고 1741년(영조 17) 3월 20일에 중수 개금을 시작하여 4월 8일에 마쳤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7월 23일에 다시 개금하였다. 불상은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인 채 결가부좌하고 있다. 머리는 소발이며 얼굴에는 양미간에 작은 백호가 있고 단정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다. 목은 긴 편이며 삼도는 없다. 널찍한 가슴은 편편하며 아무런 장신구가 없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있는데 왼손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손은 손가락을 아래로 하여 첫째 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잡고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두 팔에 걸친 채 무릎을 덮고 있다. 불상 제작 연대와 중수 기록이 있고 또한 지장보살로서는 비교적 큰 규모이며, 조선 후기 작품이면서도 조선 전기 양식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사찰 주변에는 부도(浮屠)와 자연 휴양림 내에 있는 석탑 3기, 사지 3개소, 석불 입상 등 불교 유적이 산재하고 있다. 소재사에서 자연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북편 길옆에 1기의 부도가 있고, 마당 앞에 3기의 부도가 현존하고 있다. 길옆에 있는 1기의 부도는 복련(覆蓮)과 앙련(仰蓮)으로 원형의 기단석을 하고 그 위에 종형의 탑신을 안치하고 있다. 복련좌에는 7엽의 복엽 연화문이 양각되어 있고, 그 위에 알련좌에는 6엽의 연화문이 양각되어 있다. 탑신은 전형적인 조선 시대의 종형을 취하고 있으며, 그 상륜부에는 1조의 원형 받침을 각출(刻出)한 뒤 둥근 모양의 종두를 조각하여 놓았는데, 전체적으로 절제된 균형미가 돋보인다.
소재사 입구 마당 앞에는 3기의 부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중앙에 있는 것은 새로 조성한 것이다. 왼쪽에는 원형의 복련좌를 기단석으로 하고 탑신에 '靑□堂大師(청□당 대사)'라고 새긴 종형 부도가 있다. 오른쪽의 부도 역시 원형의 복련좌를 기단석으로 한 종형 부도가 있는데 탑신에 '송원당(松原堂)'이라고 새겨져 있다. 절 근처에는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가 솟아나는데, 샘의 물 표면에 금가루 같은 작은 먼지가 떠 있어 금물정[金水井]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가뭄 때면 달성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관련 문화재]
소재사 대웅전은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3호로 지정[2006년 4월 20일]되어 있으며, 명부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 소재사 목조 지장보살 좌상은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4호로 지정[2006년 4월 20일]되어 있다. 소재사 뒤편에 있는 달성 용봉동 석불입상(達城龍鳳洞石佛立像)은 1995년 5월 12일에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화강암에 조각한 불상으로 약사불로 추정되며, 높이는 2.8m이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