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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73
한자 李相和 詩碑
영어공식명칭 Isanghwa Sibi|Monument with a Poem Writen by Yi Sanghw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36[두류동 588-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종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901년 5월 22일 - 이상화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3년 4월 25일 - 이상화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이상화 시비 건립
현 소재지 달성공원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달성동 294-1]지도보기
현 소재지 육필공원[시인의 길-한국 현대시 육필공원]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지도보기
현 소재지 두류공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36[두류동 588-3]지도보기
현 소재지 이상화 고택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6-1[계산동2가 84]지도보기
현 소재지 수성못 -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지도보기
성격 시비
관련 인물 이상화

[정의]

대구광역시에 있는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 시비.

[개설]

대구 지역 출신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민족주의 시인으로서 식민 지배에 처한 민족적 울분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바탕에 두고 시를 썼다. 1919년 3·1운동 시위 행사를 준비하였고, 1921년 박종화(朴鍾和)와 만나 『백조』 동인이 되었으며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의 이상화 시비는 1948년 3월 14일 죽순문학회 주최로 ‘상화시비’라는 이름의 시비가 처음 세워졌다. 「나의 침실로」의 일부를 새겨 넣은 상화 시비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시비이다. 이 외에도 이상화의 시를 새긴 시비가 대구광역시 여러 곳에 있다.

[위치]

「나의 침실로」를 새긴 최초의 이상화 시비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4-1달성공원 내에 있다.

[금석문]

달성공원에 건립된 이상화 시비는 ‘상화시비(尙火詩碑)’라는 비제 아래 「나의 침실로」의 일부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달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歲月) 모르는 나의 침실(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게로.”

[현황]

대구광역시에는 이상화의 시를 새긴 시비로 「설어운 해조」가 동구 도학동 육필공원에 있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달서구 두류동 588-3 두류공원, 중구 계산동2가 이상화 고택,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 등에 각각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이상화 시비는 해방 직후 대구 지역에서 전국 최초로 결성된 시 동인인 죽순문학회가 대구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상화의 작품을 새겨 넣어 세운 것으로, 한국 문단 최초의 시비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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