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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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伊洛書堂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965[파호동 4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건립 시기/일시 | 1798년 - 이락서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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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9년 - 이락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0년 - 이락서당 중건 |
현 소재지 | 이락서당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965[파호동 46-1] |
원소재지 | 이락서당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965[파호동 46-1] |
성격 | 서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이락서당보존회 |
관리자 | 이락서당보존회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당.
[개설]
이락서당(伊洛書堂)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고 그 학풍을 잇기 위하여 만든 서당이다. 서당 건립에는 모두 아홉 문중이 참여하였는데, 성주도씨, 광주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광주이씨(廣州李氏) 등이다.
‘이락(伊洛)’이라는 이름은 겉으로는 강을 지칭하면서 내면으로는 그 당시에 추구하던 학문을 지칭한다. ‘이락’을 강 이름으로 보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앞을 흐르는 금호강을 지칭하는 이강(伊江)과 낙동강을 의미한다. 학문적 차원에서 ‘이락’이라는 말은 성리학(性理學)을 간접적으로 지칭하는데, 이천(伊川)과 낙수(洛水)가 흐르는 낙양(洛陽)에서 강학하였던 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 형제의 도통(道通)을 밝힌 책인 주자(朱子)의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에서 유래하였다.
[위치]
이락서당은 달서구 파호동에 있다. 서당이 자리 잡은 곳은 금호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궁산(弓山)이라는 나지막한 산의 기슭이다. 금호강에 인접하여 있어서 수로를 이용한 이동이 편리한 곳이었다.
[변천]
이락서당은 1798년(정조 22)에 건립하였으며, 1939년에 중수하였고, 2010년에 중건하였다. 중건하면서 진입로를 확장하였고, 외부 조명을 설치하여 강창교 위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밤에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였다
[형태]
이락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며, 정당(正堂)과 협실(夾室)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 협실은 모한당(慕寒堂)이라 하였는데 한강 정구를 존모(尊慕)한다는 뜻이고, 서쪽 협실을 경락재(景樂齋)라 하였는데 낙재 서사원을 경앙(景仰)한다는 의미였다. 서당의 북쪽 푸른 절벽은 영귀대(詠歸臺)라 하였고, 서당의 서쪽 석대(石臺)는 관란대(觀瀾臺)라 하였다.
[현황]
이락서당은 현재 이락서당보존회가 구성되어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락서당은 18세기 말에 대구 지역의 아홉 문중이 참여하여 만든 서당으로 조선 후기에 대구 서부 지역의 이름난 서당이었다. 앞으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책로가 있는 궁산이 있어서 입지 조건도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