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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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載華 |
영어공식명칭 | Choi Jaehwa |
이칭/별칭 | 최재하(崔在河),최동수(崔東秀),공동수(孔東秀),최동철(崔東哲),최덕규(崔德奎),백은(白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12월 18일 - 최재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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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최재화 구미시 해평면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7일 - 최재화 혜성단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7월 19일 - 최재화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징역 1년 6월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최재화 중국으로 망명 |
수학 시기/일시 | 1926년 - 최재화 중국 화북신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최재화 대구제일교회 목사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962년 - 최재화 사망 |
출생지 | 산양리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
학교|수학지 | 화북신학교 - 중국 |
활동지 | 해평면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중국 - 중국 |
성격 | 독립운동가|종교인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혜성단 단원|대구제일교회 목사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
[개설]
최재화(崔載華)[1892~1962]는 1892년 12월 18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해평면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고, 이후 대구에서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최재하(崔在河)·최동수(崔東秀)·공동수(孔東秀)·최동철(崔東哲)·최덕규(崔德奎)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가계]
최재화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백은(白恩)이다. 아버지는 최도원(崔道源)이다.
[활동 사항]
최재화는 해평면 산양리에서 전도사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인동면의 기독교인 박진오(朴鎭五)와 함께 1919년 4월 3일 밤 11시 30분경 산양리·송곡리·금호리의 주민들 60~70명을 이끌고 해평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55명이 검거되었으나 최재화는 대구로 피신하였다.
최재화는 1919년 4월 17일 김수길(金壽吉)·이영식(李永植)·이종헌(李鍾憲)·이수건(李壽鍵)·이덕생(李德生)·이영옥(李榮玉) 등 계성학교 학생들 및 이명건(李命健)·이종식(李鍾植)과 함께 독립운동 방법을 전환하기로 결의한 뒤 비밀결사 혜성단을 결성하였다.
최재화를 비롯한 혜성단원들은 4월 18일 「근고아동포(謹告我同胞)」, 4월 27일 「경아동포(警我同胞)」, 5월 7일 「경고관공리동포(警告官公吏同胞)」 등을 배포하였으며, 민족 자산가들에게는 독립운동 자금 헌금을 호소하였다. 상인들에게는 폐점 철시 및 일본인과의 거래 중지, 노동자들에게는 파업을 통한 독립운동 참가를 촉구하였다. 또한 대구경찰서장과 친일 인사들에게 암살 협박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1919년 5월 14일 김수길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혜성단의 실체가 드러나 단원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최재화는 이때 체포되지 않아 7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출판법」 위반,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협박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았다.
최재화는 1920년 상주에서 체포되었지만 대구로 이송 도중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베이징으로 망명하였다. 1926년 중국 화북신학교를 졸업한 뒤 지린성[吉林省] 등지에서 한인교회를 세워 목회 활동을 하였고, 1931년 대구제일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대구장로교신학교 교장,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경성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 계명대학[현 계명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교육 사업과 목회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재화의 공적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63년 12월 최재화의 고향인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최재화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애국지사 백은 최재화교사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계명대학교에서는 이사장을 지낸 최재화를 기리기 위하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의 자연과학대학을 ‘백은관’이라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