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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09
한자 徐相敎
영어공식명칭 Seo Sanggy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3년 11월 7일연표보기 - 서상교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3년 - 서상교 대구상업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43년 3월 - 서상교 태극단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43년 5월 9일 - 서상교 태극단 결단식에서 무도부장 및 등산부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43년 5월 25일 - 서상교 일제 경찰에게 체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3년 - 서상교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몰년 시기/일시 2018년 3월 13일연표보기 - 서상교 사망
출생지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학교|수학지 대구상업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215-5]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태극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상교(徐尙敎)[1923~2018]는 1923년 11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가계]

서상교의 부인은 이휘이다. 아들은 서보혁·서보현이고, 딸은 서명주·서보아·서보희이다.

[활동 사항]

1943년 3월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서상교김상길(金相吉)·이상호(李相虎)와 함께 태평양전쟁의 전황 및 아시아 각 나라의 동향, 일제의 민족 차별, 독립의 필연성 등에 대하여 논의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서상교 등은 구한말 조선이 사용하였던 태극기를 본떠 ‘태극단’이라는 단명을 정하고 약칭을 ‘T·K·D’라고 하였다. 태극단은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국내에서의 투쟁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항쟁을 이어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상교 등은 결성 이후 단원이 26명으로 늘어나자 5월 9일 대구 앞산에서 정식으로 태극단 결단식을 거행하고 조직을 구성하였다. 태극단의 조직 체계는 일반 조직과 특수 조직으로 구성되었는데, 일반 조직에는 활동을 총괄하는 관방(官房)국과 체육국 산하에 군사·무도·경기·등산·항공·박물·이화 등 8개부를 두었다. 특수 조직인 건아대(健兒隊)는 중학교 1·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들 가운데 민족의식이 높고 실천력과 책임감이 높은 학생들을 가입시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때 서상교는 무도부장 및 등산부장을 맡았다.

1943년 5월 23일 한 학생의 밀고로 단장 이상호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이상호의 집에 숨겨 두었던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각되었다. 5월 25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서상교김상길·김정진(金正鎭)·이준윤(李浚允)·이원현(李元鉉)·윤삼룡(尹三龍)·정광해(鄭光海)·이태원(李兌遠)·정환진(鄭晥鎭)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서상교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단기 4년 이상 장기 7년형을 언도받았으며, 인천소년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서상교는 2018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묘소]

서상교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15-5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서상교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총동창회는 서상교 등의 의거를 기리기 위하여 2003년 대구상원고등학교 후문 인근에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였고, 2003년 10월 19일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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