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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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東星 |
영어공식명칭 | Seo Dongs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12월 13일 - 서동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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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2년 8월 1일 - 서동성 형설회 의사부 의원 선출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4월 - 서동성 후도이샤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9월 29일 - 서동성 진우연맹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4월 - 서동성 파괴단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6월 - 서동성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7월 5일 - 서동성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6월 22일 - 서동성 만기 출소 |
몰년 시기/일시 | 1941년 1월 18일 - 서동성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서동성 건국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서동성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장관동 -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 |
거주|이주지 | 일본 - 일본 |
학교|수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일본 - 일본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진우연맹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동성(徐東星)[1895~1941]은 1895년 12월 1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형설회(螢雪會)·흑우회(黑友會)에서 활동하였으며, 1923년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후도이샤[不逞社]를 결성하였다. 귀국 후에는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서동성은 일본에 유학하던 중 도쿄[東京]의 고학생들이 조직한 형설회에 가입하였고, 1922년 8월 1일 도쿄 주오[中央]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형설회 임시총회에서 의사부의 부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뒤 박열(朴烈)·김정근(金正根)·이홍근(李弘根)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우회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4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홍진유(洪鎭裕)·최규종(崔圭悰)·육홍균(陸洪均) 등과 함께 박열의 거처에서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후도이샤를 결성하고, 기관지 『불령선인(不逞鮮人)』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關東大地震]이 일어난 뒤 일본 경시청에서 후도이샤 관련자 15명을 일왕 암살 혐의로 검거할 때 서종성도 함께 체포되었으나, 검사의 불기소로 석방된 이후 대구로 돌아와 박열의 옥바라지를 위한 의연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서동성은 1925년 9월 29일 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방한상(方漢相)·서학이(徐學伊)·정명준(鄭命俊)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단체 진우연맹을 조직하였다. 이후 서동성은 서학이·신재모·마명·우해룡·정명진 등 진우연맹원들과 함께 무정부주의 잡지 『반역(反逆)』을 통하여 활동하던 구리하라 가즈오[栗原一雄]를 만나 일본 무정부주의 조직 흑색청년연맹의 도쿄 긴자[銀座] 상점 파괴 등 여러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흑색청년연맹 가입 권유를 받아들였다.
서동성은 1926년 4월 신재모의 집에 모여 파괴단을 결성하고 활동 방침을 정하였다. 먼저, 일본의 흑색청년연맹처럼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조선인 부호로부터 자금 모금, 1926년 8월 15일을 기하여 대구부 내 도청·경찰서·재판소 등 주요 관청과 은행·회사 등 주요 시설 폭파, 도지사를 비롯한 주요 관리 암살, 대구 포정동[관공서 거리] 폭파 계획을 세웠다. 폭탄은 중국 상하이[上海]의 김판선을 통하여 확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사를 준비하던 중 진우연맹원 안달득(安達得)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이를 계기로 진우연맹의 전모가 드러났다. 서동성은 1926년 6월 검거되어 대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대구지방법원 검사국[현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었고,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서동성은 1929년 6월 22일 만기 출소하였으며, 1941년 1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서동성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