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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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南圭 |
영어공식명칭 | Baek Namg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4월 23일 - 백남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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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2월 10일 - 백남규 중국 상하이로 망명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백남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7월 - 백남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선임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백남규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백남규 건국훈장 애족창 추서 |
출생지 |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활동지 | 상하이 - 중국 상하이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백남규(白南圭)[1888~?]는 1888년 4월 2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는 등 1910년대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백남규는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자, 국권 회복의 뜻을 품고 해외로 망명하여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5년 12월 무렵까지 연해주 및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연락책의 임무를 맡고 귀국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1년 동안 투옥되었다.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1919년 2월 10일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으며,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과정에 동참하였다. 특히 경상북도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남형우(南亨祐)·김창숙(金昌淑)·김정묵(金正默)·현정건(玄鼎健)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백남규는 1919년 4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회인 임시의정원 경상도의원으로 선임되어 의정 활동에 참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구급의연금 모집, 인두세(人頭稅) 징수,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위한 국내외에서의 독립공채 모집 등의 방안을 처리하였다. 특히 1919년 7월 중순에 열린 제5회 회의에서는 법제·내무·외무·재무·군무·예산결산·청원·징계위원회 등 8개 상임위원회가 제정되었고, 통합 정부 수립 촉구 등의 중요 안건이 상정되어 처리되었다. 백남규는 5차 회의에서 예산결산상임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며 임시의정원의 기틀을 잡는 데 공헌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백남규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