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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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遇根 |
영어공식명칭 | Kim U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삼조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김우근 국채보상운동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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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김우근 교남교육회 가입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족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대동광문회 회원|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개설]
김우근(金遇根)[?~?]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1907년 대구에서 광문사(廣文社)와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가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1907년 2월 17일 대동광문회 회원이었던 강영주는 광문사 사장이자 대동광문회 부회장이던 김광제(金光濟),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대동광문회장 박해령(朴海齡)을 비롯한 회원 김병순(金炳淳)·장상철(長相轍)·강신규(姜信圭)·심정섭(沈廷燮)·김우근(金遇根)·서병오(徐丙五)·윤하선(尹夏璿)·정재덕(鄭在悳)·이종정(李鍾楨)·길영수(吉永洙)·이우열(李遇烈)·정규옥(鄭圭鈺)·추교정(秋敎廷) 등과 함께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 설립을 주도하였다. 또한 대구 북후정(北堠亭)에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여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를 공표하고 국채 보상에 필요한 모금 활동을 결의하였다. 이후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가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리면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김우근은 1908년 교남교육회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는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였는데, 김우근은 이때 김광제·김기석·김병수·강영주·김종구·박병옥·박정동·이상호·서상거·서상일·이갑성·이근영·이근중 등 36명과 함께 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