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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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奉道 |
영어공식명칭 | Kim Bongd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할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봉도(金奉道)[1895~?]는 1895년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 정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기독교부속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20년 8월 대구 출신의 이현수(李賢壽)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북교통사무특파원에 임명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펼쳤는데, 김봉도는 1921년부터 백군언(白君言)·정팔진(丁八鎭)[일명 정덕진(丁德鎭)] 등과 함께 독립공채 모집 활동에 동참하였다. 김봉도 등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위한 경고문을 비롯하여 물품 불구매 고지서, 납세 거절 협박문, 각종 포고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에 관한 인정서 등을 인쇄하여 경상북도 관내 한국인 군수·면장 등과 부호들에게 우송하는 한편, 한밤중에 대구 시내의 한국인 가게 앞과 거리에서 독립운동 문건을 뿌리기도 하였다. 또한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워싱턴 군축회의에 맞추어, 대구·평양·전주·부산 등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조선 독립 청원과 지지 등을 요청하는 영문 책자를 우송하였다. 김봉도는 1923년 1월 말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