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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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夢徵 |
영어공식명칭 | Park Mongjing |
이칭/별칭 | 면재(勉哉),술재(述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가계]
박몽징(朴夢徵)[1658~1738]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면재(勉哉), 호는 술재(述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이고, 아버지는 박진공(朴振羾)이다.
[활동 사항]
박몽징은 1658년(효종 9)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상도 감사 민응수(閔應洙)가 1737년(영조 13) 3월 3일에 경상도의 인재들을 천거하였는데, 이때 박몽징에 대하여 말하기를 “전후의 도신(道臣)들이 독학(篤學)으로 천거하였으나 끝내 일명(一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1779년(정조 3) 6월 14일에는 영남 암행어사 황승원(黃昇源)이 조정에 보고하기를 “박몽징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 지극한 효행(孝行)이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효도와 우애가 매우 돈독하고 친상을 당하여 죽을 마시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복호(復戶)[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가 내려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박몽징의 저술로는 『가범술지(家範述誌)』가 있다. 1738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