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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09
한자 有華堂 旌孝閣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193-14[도남동 36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도성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6년연표보기 - 유화당 정효각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7년 - 유화당 정효각 수리
현 소재지 유화당 정효각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193-14[도남동 362]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솟을대문형
소유자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이희성, 이희효 형제의 효자 정려각.

[개설]

유화당 정효각(有華堂 旌孝閣)유화당의 솟을대문을 말하는 것으로 솟을대문 안쪽 상부에 정려 편액과 정려 기문이 걸려 있다. ‘유화당’이란 ‘국화가 가득한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도 국화를 가꾸고 있다. 솟을대문에 정려 편액이 설치된 형태의 정려각을 일명 ‘솟을대문형 정려각’이라고 한다. 매국(梅菊) 이희성(李希聖)과 용호(龍湖) 이희효(李希孝) 형제는 1878년(고종 15)과 1880년(고종 17) 각각 조정으로부터 효자로 정려받았다.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916년 유화당 정효각을 세웠다. 현재 대구광역시 내에서 솟을대문형 정려각은 유화당 정효각이 유일하다. 이희성과 이희효 형제는 천성이 순수하고 효성스러웠다. 집이 가난하였으나 어버이를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중병을 얻게 되어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켜 수명을 5년이나 늘렸다. 그 후 부자(父子)가 함께 돌림병을 만났는데 아버지의 병환이 위태로워 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상(傷)을 더하여 이희효는 세상을 떠나니 듣는 사람이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희성와 이희효는 수의어사(繡衣御史)의 장계로 포상되어 형 이희성은 가선대부 참판에 증직되었고, 동생 이희효은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위치]

유화당 정효각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 362번지에 있다.

[변천]

유화당 정효각은 2017년 도괴 직전 대구문화유산에서 임시로 수리하였다.

[형태]

유화당 정효각은 대구 유일의 솟을대문형 정려각이다.

[현황]

유화당 정효각은 2017년 임시로 수리하였으나 현재 보완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고, 대문 옆 양협실의 목재 기둥의 아랫부분은 현재 부식되어 사라진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유화당 정효각은 대구 유일의 솟을대문형 정려각으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 정려각의 지붕은 원형대로 복원되지 않았으며, 협실은 훼손되어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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